“대통령 잘 안다” 또 청와대 사칭 사기

  • 입력 2006년 2월 22일 02시 59분


코멘트
청와대 인맥을 사칭하며 거액의 돈을 받아 챙기는 사기 행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21일 대통령 내외와 막역한 자신이 국책사업 추진을 위해 급히 로비자금이 필요하다며 주모(70) 씨에게서 7억5000여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로 고모(46) 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이에 앞서 서울 서초경찰서는 19일 대통령 부인의 막내 동생을 사칭해 사업권을 주겠다며 건설업자에게 접근해 수천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로 권모(48) 씨를 구속했다.

▶본보 20일자 A11면 참조

▽꼬리 무는 황당한 사기=경찰에 따르면 고 씨는 지난해 7월 종로의 A커피숍에서 주 씨를 만나 “무현(노무현 대통령)이 형과 형수는 물론 근혜(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누나도 잘 안다”며 “해병대사령관 출신의 아버지가 물려 준 경북 울진군 등지에 국책사업으로 대통령별장 등을 건설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고 씨처럼 청와대 인맥을 사칭하는 사람의 특징은 대부분 브로커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한다는 것. 주 씨 역시 사업상 알고 지내던 사채 브로커에게서 고 씨를 소개받았다.

이들 사기꾼에게는 일명 ‘바람잡이’들이 따라 다닌다. 고 씨는 주 씨를 만나는 자리에서 ‘청와대 4급 비서관’이라며 자신의 운전사를 항시 대동했다. 비서관이나 경호원이라는 명칭 역시 이들이 가장 흔하게 쓰는 직함.

이들이 “곧 대규모 투자가 들어올 예정인데 당장 돈이 급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사기 수법. 유명인사와 찍은 사진, 청와대 방문 기념시계, 가공의 인물 등도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들이다.

▽‘청와대’라면 왜 속나=황당할 정도의 청와대 인맥 사칭 사기수법에 속는 사람들 다수는 특별히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국내 대기업 상무로 퇴직한 뒤 개인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주 씨 역시 “고 씨는 확실한 인물”이라며 가족이나 주위의 경고를 무시했다.

수사를 담당한 한 경찰 관계자는 “권력 사칭 사기에 당하는 사람 다수가 사업 실패나 사기의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들로 비정상적, 불법적 방법으로 보상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이윤호(李潤鎬·경찰행정학) 교수는 “청와대와 같은 권력 사칭 사기가 많은 것은 법이나 질서보다 권력에 의해 사회가 돌아가는 ‘권력종속형사회’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