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대충 때우고 놀다 왔다”

  • 입력 2005년 12월 24일 03시 06분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열린 23일 개정 사립학교법 무효화 투쟁의 선두에 선 이규택(李揆澤) 의원이 “장외투쟁에 집중하기 위해 국회 의장실 점거농성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아울러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이 사학법 강행처리로 의장으로서의 ‘정치적 생명’이 다한 만큼 의장실에서 더 농성을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김 의장에 대해 ‘시체’라며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이 직후 한나라당 의원들은 강재섭(姜在涉) 원내대표의 제안에 따라 의장실로 몰려가 ‘사학법 원천무효’, ‘김원기 의장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몇 번 외쳤다. 11일간 끌어온 의장실 점거농성이 흐지부지 끝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영 어색해 보였다. 또 김 의장의 정치적 생명이 사학법 강행처리 때 끝났다면 무엇 하러 그 이후 11일간이나 의장실에서 농성을 했다는 것인지 도통 논리도 맞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의장실 점거농성은 일부 의원의 음주사건 등으로 빈축을 사고 있던 터라 사실 지속할 힘을 잃어가던 상황이었다. 의원들은 통닭을 의장실로 반입해 ‘치킨 파티’를 여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학법 무효화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 시큰둥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19일 부산 집회에 참석했던 한 수도권 의원은 “엄동설한에 끌려가서 대충 때우고 놀다 왔다”고 말했다. 영남권의 한 의원은 23일 인천 집회 참석 여부를 묻자 “수도권 의원도 많은데 나까지 뭐…”라고 했다. 또 당 ‘사학법 무효화 투쟁운동본부’ 소속의 한 의원은 “사무처 당직자들이 논의할 안건들을 갖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의원들을 불러 회의를 하는 모습이 완전히 ‘봉숭아 학당’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분위기는 17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정치 생명을 걸고’ 장외투쟁을 외치는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절박한 태도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웰빙 정당’의 폐단 때문일 수도, 장외투쟁이 설득력을 갖지 못해 그럴 수도 있다. 소속 의원들조차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장외투쟁이 국민에게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정은 정치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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