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그곳에 가면/화도진공원

  • 입력 2005년 9월 28일 0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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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저 오래된 대포는 누가 만든 것인가요?”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종이 설치한 화포란다.”

김정민(62) 씨는 초등학생인 손자들을 데리고 인천 동구 화수동 138 화도진(花島鎭) 공원을 자주 찾는다.

개화기 인천 앞바다에 자주 출몰한 일본 군함 등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용한 재래식 화포와 당시 병사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 등 볼거리가 많기 때문.

또 공원 인근 화도진도서관은 인천지역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외세의 개항 압력을 둘러싼 근대사의 전개과정과 화도진의 역사적 의의를 가르치는 ‘1일 향토교실’을 열고 있어 역사교육 코스로 손색이 없다.

김 씨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화도진 언덕에 올라서면 영종도와 작약도가 한 눈에 들어왔다”며 “공원에서는 전통 문화예술행사가 자주 열린다”고 말했다.

인천시 지정 기념물 2호인 화도진은 개화기 때 외세에 대항한 호국 의지가 서려있는 곳이다.

화도진은 1879년 고종이 설치한 군사기지로 곶(바다 쪽으로 길게 뻗쳐진 육지)의 모양이어서 ‘곶섬’으로 불리다 ‘꽃섬’이 됐다. 그 후 꽃섬을 ‘화도(花島)’로 불렀다는 게 인천 향토사학자들의 설명.

고종은 화도진에서 제물포와 소래 등 인천지역 8곳의 포대를 맡게 하고 병사와 함께 무기고를 배치했으나 외세에 관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1882년 청나라의 지원을 등에 업은 미국의 개항 요구를 받아들여 이 곳에서 ‘한미(韓美)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화도진은 갑오경장(1894)으로 군제가 개편됨에 따라 폐지돼 모두 헐렸으나 인천시가 1982년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화도진도(花島鎭圖)’를 바탕으로 당시 병영과 군사들이 사용하던 우물을 복원해 공원으로 만들었다.

무기창고를 개조해 만든 전시관에는 무기와 집기류 등 구한말 군사 장비 650여점이 전시돼 있다.

공원에서는 1990년부터 매년 5월 화도진축제가 열린다. 구한말 고종이 어영대장을 인천에 내려 보낸 행차 장면 재현행사를 시작으로 조선전통무예 공연, 조선병기전시회를 볼 수 있다.

명절 때마다 주민이 참가하는 전통 민속놀이 경연대회행사가 열리고 인천의 개화기 모습을 담은 사진전은 수시로 관람할 수 있다.

‘세숫대야 냉면’으로 유명한 화평동 냉면거리가 공원에서 가깝다. 입장료는 없다. 032-770-6892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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