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부부 양육권, 기른情이냐 낳은情이냐

  • 입력 2005년 9월 1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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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젱킨스 씨(왼쪽)와 리사 밀러 씨가 헤어지기 전 자녀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 제공 AP
제니퍼 젱킨스 씨(왼쪽)와 리사 밀러 씨가 헤어지기 전 자녀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 제공 AP
이혼한 부부가 양육권 문제로 법정 다툼까지 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애끓는 모정(母情)과 헤어진 아내가 키우는 자녀들과의 짧은 만남에 애달픈 부정(父情)도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

만일 동성 결혼한 부부 사이에 양육권 분쟁이 벌어진다면 법정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까.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니퍼 젱킨스(40·여) 씨와 리사 밀러(36·여) 씨. 레즈비언인 이들은 2001년 결혼하기 위해 버몬트 주로 이주했다. 버몬트 주에서는 동성(同性) 결혼은 아니지만 동성 부부에게도 이성 부부와 똑같은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동성 결합(civil union)’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시 고향 버지니아로 돌아왔고 이듬해 밀러 씨가 인공수정을 통해 딸 이사벨라를 낳았다. 하지만 딸을 낳은 지 1년이 채 안 돼 이들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됐다.

문제는 ‘딸을 낳는 데 기여하지 않은’ 젱킨스 씨에게 부모로서의 권리가 있느냐는 것. 젱킨스 씨는 이사벨라를 기른 부모로서 정이 들었으므로 이혼 후에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visitation right)을 요구했다.

그러나 밀러 씨는 자신이 이사벨라의 유일한 부모이기 때문에 젱킨스 씨에게 면접교섭권을 인정해줘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법조계는 이 사건이 궁극적으로 연방대법원에서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정의한다. ‘양성의 평등’의 해석에 따라 동성결혼이 허용될 여지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하위법인 호적법은 결혼을 남녀의 결합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혼인신고조차 할 수 없다.

동성결혼에 대한 논의조차 터부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동성 커플간 자녀 친권 문제는 낯설다. 하지만 이사벨라를 둘러싼 ‘부부’의 애달픈 사연의 ‘한국판’이 한국 법정에서 재연될 때도 곧 오지 않을까.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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