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5년 9월 6일 03시 0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1967년 9월 6일 갱도에 매몰된 지 15일 8시간 35분(368시간 35분) 만에 극적으로 구조돼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양창선(楊昌善·당시 36세) 씨 사고를 다룬 동아일보 1면 기사의 첫 구절이다.
충남 청양군 사양면 구봉금광의 지하 125m 갱내에 매몰됐던 양 씨의 구조작업은 모든 매스컴과 국민의 관심 속에 진행됐다. 당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비서관을 보내 구조작업을 독려하는 등 각계 유명인사들이 앞 다투어 현장을 찾았다. 매스컴에서는 양 씨를 돕기 위한 성금 모금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인 데다 국내정세마저 불안했던 그때 ‘세계신기록’을 세운 양 씨의 구조는 그야말로 온 국민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구출된 양 씨도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헬기에 태워져 서울 메디칼센터로 옮겨졌으며 병원 측은 특별 주치의를 배정하는 등 ‘초VIP 대우’를 했다.
그가 가진 첫 기자회견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의 ‘대통령·국민·언론계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소제목은 당시 국민과 언론의 관심을 그대로 반영한 셈이다.
그러나 양 씨의 기자회견 답변에서는 이런 흥분보다는 소박한 소시민의 심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가장 절실한 것은 밥 생각이었다. 그 다음 어린애와 마누라 생각이 났다. 돈을 벌었으면 갱도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을 하는 후회도 났었다.”
그는 구조 직전까지 매스컴에서 ‘김창선’으로 불리다 구출 직후 양씨 성을 되찾았다.
이 사고는 몇 년 뒤 극작가 윤대성(尹大星)의 희곡 ‘출세기’로 다시 태어나 1970년대 중반 연극무대에 오르는 등 당시 우리가 처한 삶을 비극적으로 묘사하는 소재가 됐다.
‘한 광원의 출세와 좌절’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생명의 존엄보다는 비용에 민감한 광업소, 사고의 문제점보다는 매몰기록 수립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매스컴, 자기과시 책임회피 이익획득에 치중하는 각계 인사 등을 등장시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뒷면을 날카롭게 풍자함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양 씨의 최장 매몰기록은 28년 뒤인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15일 17시간(377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박승현(당시 19세) 양에 의해 깨졌다. 하지만 이때는 양 씨 사고와는 달리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생명의 경이에 대한 찬탄이 주를 이뤄 달라진 세태를 절감케 했다.
김동철 정치전문기자 eastphil@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