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눈물, 바람은 한숨… 이 설움 뉘 알까”

  • 입력 2005년 6월 24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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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렇게 웃을 수 있었으면”꿈 많던 16세 때부터 소록도에서 지내온 김기현 할아버지와 김복화 할머니 부부. 강제노역과 사회의 차가운 눈길에 시달리며 섬에서 70년 이상을 살아왔지만 두 손을 잡은 노부부의 얼굴이 평화로워 보인다. 소록도=김미옥 기자
“항상 이렇게 웃을 수 있었으면”
꿈 많던 16세 때부터 소록도에서 지내온 김기현 할아버지와 김복화 할머니 부부. 강제노역과 사회의 차가운 눈길에 시달리며 섬에서 70년 이상을 살아왔지만 두 손을 잡은 노부부의 얼굴이 평화로워 보인다. 소록도=김미옥 기자
《아기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小鹿島). 전남 고흥군 도양읍 항구에서 배로 5분이면 닿지만 지금까지 육지 앞에 자신을 숨겨 왔다. 뭍사람들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섬과 육지를 가른 것은 바다가 아닌 뿌리 깊은 편견과 이유 없는 차별이었다. 국가가 그 섬을 찾아 나선다. 천형(天刑)의 땅이 된 지 89년 만의 일이다. 본보는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소록도와 전국 89개 한센인 정착촌에 대해 전면 실태조사에 나선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소록도와 경남 사천시 실안동의 한센인 정착촌을 2박 3일간 현지 취재했다. 국가로부터 인권을 철저히 유린당한 그들의 생생한 증언과 어른들을 대신해 그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준 학생들의 소록도 체험기 등을 2회로 나눠 싣는다.》

“소록도 앞바다는 우리 눈물이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우리 한숨 아이가.”

장기진(84) 할아버지의 지난 64년은 켜켜이 한(恨)이다.

그는 15세에 한센병이 생겼다. 5년 뒤인 1941년 고향인 경북 청송을 떠나 이곳으로 들어왔다. 일제강점기에 경찰이 집에 여러 번 찾아왔다. 그리고 “3년이면 낫는다”며 억지로 소록도로 보냈다. 할아버지는 지난해 10월에야 처음으로 섬 밖을 구경했다.

“인자 밖에 안 나갈라꼬. 식당에서 음식 안 판다고 나가라고 하드라. 이발소도 우리 가면 문 닫는다. (뭉개진 손을 보여 주며) 닿을까봐 사람들이 벨로 안 좋아한다. 옮는 병도 아닌데….”

▽2005년 여름, 소록도=‘국가인권위원회가 한센인들을 찾아갑니다.’

소록도의 건물 곳곳마다 28∼30일 인권위의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알리는 하늘색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소록도 사람 누구나 인권위의 방문 사실을 잘 안다. “천대받고 살아온 세월을 씻을 수 있겠다”는 기대와 “용두사미가 될 것”이라는 체념이 뒤섞인 상태. 국립 소록도병원의 모태는 1916년 조선총독부령으로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이다.

가장 많을 때는 6254명(1947년)이 소록도에 살았다. 지금은 698명. 평균 연령이 72세다.

취재팀이 20일부터 2박 3일간 머무는 동안 적지 않은 관광객이 섬을 찾았다.

▽그들의 증언=가족과 이웃에게 외면당하고 문전걸식으로 끼니를 이어야 했던 한센인들. 일제강점기 소록도에 끌려와 배 곯아 가며 벽돌 만들고 가마니를 짰다는 김기현(89)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강제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이들은 바다를 건너다 빠져 죽거나 다시 붙잡혀 들어와 무작스럽게 맞았지. 섬 안에서 결혼해 살려면 ‘단종수술’(정관수술)을 받아야 했어.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을 속으로 얼마나 삼켰는지….”

정응식(78) 할아버지는 오마도 간척사업(1962∼64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한센인 5000여 명이 달려들어, 농사짓고 살아 보겠다고 갯벌에 미친 듯이 흙을 퍼다 부었지. 아픈 몸을 이끌고 죽도록 일했는데, 한순간에 권력에 빼앗기고 만 거야. 물에 빠져서 다 죽자고 할 정도로 억울했어.”

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차별과 멸시의 대물림이다.

정성철(52) 씨는 1957년 ‘비토섬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경남 사천군(현 사천시) 서포면 비토섬에서 농토를 개간하던 한센병 환자 28명이 섬 주민에게 학살당했다.

3남매를 둔 한 아주머니는 자신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사돈댁이나 사위, 며느리는 내가 소록도에 있다는 사실을 몰라요. 우리 애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나 죽고 나서도 비밀입니다.”


소록도(고흥)=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유전-전염된다” 오해가 가장 큰 장벽▼

정부는 2001년부터 문둥병, 나병으로 불리던 질환의 이름을 한센병이란 말로 순화시켰다. 문둥병이나 나병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였다. 한센은 이 병을 일으키는 나균을 발견한 노르웨이 출신의 의사 이름.

그러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국민들의 의식까지 달라지진 않았다. 한 여론조사기관이 지난달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센병과 한센인에 대한 의식을 조사한 결과 35%가 한센병은 치료가 불가능한 유전병으로 전염성이 강하다고 응답했다.

사실은 정반대다. 한센병은 3군 전염병 중에서도 전염력이 낮은 질병 중 하나다. 보통 사람의 95% 이상은 한센병에 대한 자연항체가 있어 한센병 환자와 어떤 접촉을 해도 전염되지 않는다. 특히 한센병 환자가 ‘리팜피신’이라는 치료약 4알을 한 차례만 복용하면 나균의 전염력이 99.99% 사라진다. 유전되지 않을뿐더러 얼마든지 완치될 수 있다.

그런데도 절반에 가까운 한센인이 사회와 격리돼 있다. 한센인 가운데 82%는 정착촌이 사실상 수용소와 다름없다고 느끼고 있다. 무지와 편견의 벽이 사회와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인권위 활동은…전국 89개 정착촌 방문상담▼

국가인권위원회는 28일부터 30일까지 소록도에서 인권상담 및 실태조사에 나선다. 국가기관이 현장조사를 위해 소록도를 찾는 것은 처음이다.

이 기간에 소록도에선 지역 공무원과 지방의회 의원, 교육청 및 시민단체 관계자가 모여 지역사회에서 한센인과 어울려 살기 위한 토론회를 연다. 지역사회의 협력 없이는 한센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인권위가 마련한 자리.

인권위는 소록도 방문을 시작으로 전국 89개 한센인 정착촌을 모두 방문 조사할 예정이다. 연말까지 현지 조사와 전문가 간담회를 거쳐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인권정책을 정부에 권고할 계획이다.

또 한센병과 한센인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대국민 캠페인을 마련하고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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