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민단체 현주소는…‘시민없는’ 시민단체

  • 입력 2005년 6월 17일 0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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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제3섹터연구소의 시민사회지표(CSI) 연구결과는 국내 시민단체의 현주소를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명망가 위주의 운영’, ‘취약한 내부 구조’ 등 그동안 지적된 문제점이 계량화된 수치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시민단체가 정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 못지않게 내부 개혁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서비스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 분야에 치중된 활동=2000년과 2004년 총선에서 시민단체가 벌인 낙선운동은 시민단체의 영향력과 문제점을 함께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번 조사에서 시민단체는 정치개혁, 반부패 운동, 인권보호 등 정부의 공공정책에 미치는 영향력 분야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으나 다른 역할에는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시민의 능력 배양에 미치는 영향을 5가지 항목으로 나눠 조사한 결과 ‘여성 능력 배양’ 내용이 가장 높은 점수(2.2점)를 받았으나 이는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의 6가지 항목 평균치(2.5점)보다 낮은 것.

특히 상당수 시민단체가 회원 수와 회비 납부액이 적어 재정 압박을 받아 온 현실이 이번 조사에서 그대로 입증됐다.

재정 부문 점수는 가장 낮은 0.8점이었으며 조직 및 기술(1.0점)과 인적자원(1.3점) 부문도 취약한 것으로 나왔다. 시민의 참여를 통한 상향식 운동이 아니라 명망가 중심의 하향식 운동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단체를 이끄는 지도부의 대표성에 대해서도 시민단체 관계자들 스스로가 ‘문제 있다’(45%)고 대답할 정도다.

▽의사소통 내실 부족=시민단체 내부의 투명성,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 노력, 환경보호 활동은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폭력에 의존하지 않은 활동이 긍정적인 점으로 평가됐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시민단체 간 연대활동에 대해 80.9%가 ‘매우 활발하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나 ‘실질적인 의사소통은 부족하다’는 응답이 44.6%나 돼 내실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연대기구가 일부 단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름만 올려놓는 소극적 참여에 그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과 광주는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한 반면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광주의 경우 시민의 참여도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았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대안제시 노력해야=시민단체들은 이런 연구 결과에 대체로 동감하면서 활동방향을 재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인정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순철(尹淳哲) 정책실장은 “2000년 총선 당시의 낙선운동을 계기로 시민단체가 정치적 활동에만 치중한다는 인상을 주면서 국민의 신뢰도가 꾸준히 하락했다”며 “시민단체의 정체성에 대한 내부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경실련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통일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입장을 발표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백화점식 운영’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부동산, 금융 등 경제 분야와 관련되지 않은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의 홍진표(洪晋杓) 정책실장은 “시민단체가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를 다 다루다 보니 입장을 발표하는 수준에 그쳤다”며 “전문화되거나 구체적인 정책을 내세우면서 일반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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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 세계시민단체연합(CIVICUS)은

110개국 882개 NGO 가입… 남아共에 본부

■ 시민사회지표(CSI)는

CIVICUS가 만든 시민단체 종합 평가 지표

세계시민단체연합(CIVICUS)은 전 세계 110개국 882개의 시민단체가 가입한 비정부기구(NGO)로 1993년 설립됐다. CIVICUS는 ‘시민과 관련된’이라는 뜻의 라틴어. 본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으며 주로 제3세계 시민단체의 지원에 힘쓰고 있다.

CIVICUS는 시민단체를 평가하는 지표가 양적인 측면에만 의존해 통계가 불확실한 제3세계 국가에서는 시민단체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시민사회지표(CSI)를 새로 만들었다.

CSI는 시민단체의 활동인원과 예산 등 현황 자료, 언론보도 분석, 일반 시민과 시민단체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종합해서 만든 지표.

한국 시민단체 연구를 맡은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는 이번 분석을 위해 시민 600여 명과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 102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했으며 정부 관계자와 사회학자 등 전문가 15명에게 자문했다.

현재 미국, 스웨덴 등 선진국과 인도, 파키스탄 등 제3세계 국가를 포함해 60여개국을 대상으로 CSI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종 결과는 내년에 열리는 국제회의에서 발표된다.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제6차 정부혁신세계포럼에 참가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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