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원어민보조교사 수업 가보니…“English is fun”

  • 입력 2005년 6월 9일 03시 05분


“원어민 선생님 수업은 너무 재미있어서 귀에 쏙쏙 들어와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중동중 2학년 학생들이 캐나다인 교사에게 영어회화 수업을 받고 있다. 전영한  기자
“원어민 선생님 수업은 너무 재미있어서 귀에 쏙쏙 들어와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중동중 2학년 학생들이 캐나다인 교사에게 영어회화 수업을 받고 있다. 전영한 기자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달 30일 영어교육에 대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10년까지 전국 2850개 중학교에 ‘영어 원어민 보조교사’ 1명씩을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어민 교사 1명에 연간 약 3000만 원에 이르는 비용이 드는 것에 비해 교육적 효과는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본보 교육팀은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고 있는 서울 중동중과 신현중의 영어회화 수업을 참관하고 영어교육에서 원어민 교사의 득실을 따져 봤다.》

7일 서울 중랑구 상봉동 신현중 2학년 8반 영어회화 수업.

영어 원어민 보조교사 홀리 핀처(25·여) 씨가 “지난주 수업에선 무엇을 했죠(What did we do last week)?”라고 묻자 여기저기서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봤다”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은 교사의 “영화의 주요한 2개 주제가 뭐였느냐” “주인공이 어떤 일을 했느냐”는 질문을 하자 번쩍 손을 들고 서툴지만 큰 목소리로 답했다.

수업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 학급 정원 36명 가운데 19명(54%)이 “원어민 교사의 수업을 90% 이상 이해한다”고 말했다. 한국인과 원어민 교사 수업 중 한 과목만 선택하라면 원어민 교사 수업을 선택하겠다는 학생이 35명이나 됐다.

핀처 씨는 “지난해 9월 처음 왔을 때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 학생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이해한다”며 “한국은 영어회화를 너무 늦게 시작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 강남구 일원동 중동중의 영어회화 교실에선 2학년 학생 19명이 원어민 교사 조너선 애넛(35) 씨와 스스럼없이 농담을 나눴다.

이 학교 2학년 박재영(15) 군은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영어를 계속 쓸 수 있어 좋다”며 “영어학원 수업은 문법 위주인데 학교는 작문과 발표 위주라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애넛 씨가 빠른 속도로 긴 질문을 했는데도 학생들은 잘 알아듣고 한 마디라도 더 대답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말문 여는 데 큰 도움=2004년 현재 영어회화를 가르칠 수 있는 비자(E-2)를 받은 영어권 원어민은 7921명이지만 학교 등 공교육 기관에서 일하는 인원은 671명에 불과하다.

문민정부가 세계화를 강조하면서 1995년 원어민 교사 제도를 도입했지만 비용에 비해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자 2002년 주관 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떠넘겼다.

지난해 말 현재 서울시내 9개 중학교에 채용된 12명의 원어민 교사는 학교가 자체 예산으로 초빙해 쓰고 있다.

중2 딸을 둔 김민영(40·여) 씨는 “학교에서 영어교육을 강조할수록 학부모의 부담만 커질 뿐”이라며 “학원에선 넘쳐 나는 외국인 교사를 왜 학교에선 찾아볼 수가 없느냐”고 물었다.

▽철저한 관리방안 필요=원어민 교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학교별로 각각인 원어민 교사의 운용 지침, 수업 매뉴얼을 정교하게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동중 김영배(金英培) 교장은 “원어민 교사는 2년마다 바뀌는 데다 교사자격증이 없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원어민 교사의 수업 매뉴얼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원어민 교사의 월급은 140만∼260만 원이지만 숙소 제공까지 합치면 1인당 연간 3000만 원 정도 든다. 문화 차이로 인한 불만도 많아 학교 측도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외국인교사 관리할 전담기구 필요”▼

한나라당 제5정책조정위원장인 이주호(李周浩) 의원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 제도 현황과 발전방안’을 주제로 간담회를 갖고 원어민 교사 업무 전담기구 신설을 제안했다.

이 의원은 “우리나라의 원어민 교사 초청 실적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한 해 평균 285명밖에 안됐다”며 “그나마 현재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강사에 대한 관리도 제대로 안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어민 교사의 연수, 관리뿐 아니라 위조 학위증을 가진 외국 강사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2900명을 고용하는 것은 무리”라며 “먼저 원어민 교사 업무를 총괄하는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