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영숙]환경문제 전담 법원 설치하자

  • 입력 2005년 2월 4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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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환경이 잘 보전된 나라를 꼽으라면 많은 경우 호주를 떠올릴 것이다. 오염이 적고 환경보전을 생명처럼 여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호주도 적잖은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개발론자와 환경보전론자 간 대립과 갈등이 첨예해 혼란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1970년대 환경·시민단체들의 개발 반대 시위는 극렬했다. 철광석 광산과 산림지역의 개발에 반대하며 나무와 자신들의 몸을 체인으로 감거나 댐건설 현장에서 드러누운 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극심한 데모 때문에 호주 정부는 골치를 앓았다. 그 뒤 나온 게 환경법원이다. 1979년 ‘국토 및 환경법원’을 만들고 여기서 환경·개발·건설 계획과 관련한 문제를 전담하게 했다.

최종심인 환경법원은 원고와 피고 측 전문가들 간에 치열한 논박을 벌인 뒤 중재와 조정 절차를 거쳐 법관(단)이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판결을 내리며, 판결 내용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 결과 환경문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제도권의 틀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이제 호주에서 환경문제로 데모를 하는 사람들은 “왜 환경법정에 가서 하지 여기서 그러느냐”는 핀잔을 듣는다. 다수의 말없는 국민에게 소모적인 데모로 불안과 불편을 끼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인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20년이 걸렸다.

호주에서는 지금도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의 시위가 빈번하지만 소모적인 감정싸움으로 번지지는 않는다. 국무총리나 장관들이 직접 전면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정부와 환경·시민·종교단체 간의 갈등으로 비치지도 않는다. 환경문제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환경법원을 중심으로 논리적 생산적인 논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율 스님이 단식을 중단했지만 이런 상황의 재연을 막을 제도적 대안이 하나도 없으니 국민은 우울하다. 지율 스님이 요구한 고속철도 대구∼부산 2단계 구간의 천성산 터널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은 1심과 항고심에서 각각 각하 및 기각 결정이 났다. 그런데도 논란이 계속되는,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이 같은 상황이 자꾸 발생하면 사람들은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발론과 환경론의 갈등은 사회 구성원들을 매우 곤혹스럽게 한다. 특히 지키려는 가치에 비해 사회 전체가 지불해야 할 대가, 즉 코스트가 너무 클 경우 국민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측은 2010년 완공 예정인 고속철도 대구∼부산 2단계 구간 공사가 노선 수정으로 지연되면 1년에 2조 원 이상의 사회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본다. 이 돈은 나와 내 이웃이 내는 세금이다. 감성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으로 꼼꼼히 손익을 따져야 할 문제다.

이와 함께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사태를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풍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외국인은 터널공사 때문에 목숨을 내놓는 정도까지 가는 극한 상황이 서구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한다. 이제 환경론자나 사회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입장뿐 아니라 말없는 다수 국민에게 영향이 미치는 문제, 즉 세금을 더 내야 하거나 외교 안보에 관계된 중대 사안은 국가적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책임이 있다.

새만금 사태, 핵폐기물처리장 등 첨예한 갈등 사안을 합리적이고 생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외국처럼 환경법원을 설치하는 방안을 우리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모색해 봄 직하다.

박영숙 주한 호주대사관 문화공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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