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백이' 총각의 101번 맞선기<2>

  • 입력 2005년 1월 3일 15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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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약백이 총각의 101번 맞선기’ 첫 번째 순서로 “평택까지 오라하고 퇴짜라니?”를 내보낸 뒤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대체적으로 과거의 경험상 ‘공감이 간다’는 의견이 많았고, 격려와 함께 나름의 ‘맞선녀 공략법’을 전수해주는 독자도 있었다.

일부 거짓말 같다고 말하는 독자도 있었지만, 필자는 "95%이상이 실화고 상대의 마음을 예상하는 경우 등 5%정도는 나의 상상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번에 두 번째 순서로 맞선녀에게 “제발 3번만 만나주세요!”라고 구걸(?)했으나 결국 퇴짜 맞은 얘기를 내보낸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미안하네요, 바빠서 못 나가요"

[어느 총각의 101번 맞선기]<2>"제발 만나줘~" 구걸 사건

세 번 이상 만나면 성공...문턱에서 좌절, 아쉬움

내가 수없는 소개팅을 해봤지만 솔직히 3번 이상 만난 사람의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이상하게 소개팅에만 나가면 그 당시에는 분위기가 좋고 여자 쪽에서도 상당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은데 돌아 와서 연락을 취해 보면 나만의 착각 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곤 한다.

그래서 나는 4번이상만 만날 수 있다면 여자를 사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 혼자만의 생각을 하곤 한다. 이번 얘기는 그 3번을 채우기 위해 나 스스로가 한없이 처량해 졌던 사건을 말해보려 한다.

◈맞선을 본 후 세 번 이상 만나지 못한 나로서는 네 번은 마의 벽이 되었다.

때는 2003년 9월 말로 기억이 된다.

이 당시 나는 소개팅에 상당히 굶주려 있는 상태였다. 소개팅을 언제 해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때. 더 이상 소개팅 기간을 놓치면 그동안의 감각을 다 잃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내가 그동안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것이 얼만데.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어. 그래, 성공을 위해서 계속해서 밀고나가야지’ 굳은 마음으로 평소에 알고 절친하게 지내던 선배를 조르기 시작했다.

그 선배의 직업상 은행을 많이 출입하는 관계로 은행 여직원 소개를 강력히 부탁했다.

몇 달을 조르고 졸랐을까. 선배도 지쳤는지 마지못해 내가 일하는 직장 근처 은행 아가씨와의 약속을 잡아 줬다.

‘그래, 이번엔 정말 잘해야지. 여자 은행원도 괜찮지. 우수한 넌 할 수 있어 잘하자’라고 다짐까지 했다.

약속은 둘 다 회사가 근처에 있어 회사 근처로 퇴근 후 7시로 정했다.

항상 그렇지만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 일이 손에 잡히겠는가? 누가 나올까? 성격은 어떨까? 예쁠까? 하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약속장소로 향했다. 약속장소인 레스토랑은 이른 시간임에도 몇몇 손님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식사와 음료를 즐기고 있었다.

“혼자 오셨습니까?” 웨이터의 친절한 물음 이었다.

“여자분 만나기로 하셨나요.”

‘아. 나 말고도 소개팅 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보구나’

“네”

“저 쪽에 창가에 여자분 기다리고 계십니다.”

웨이터가 가리키는 1층 구석에 여자분 한분이 앉아 있었다. ‘저 사람일까? 그렇게 썩 내 타입은 아닌데’하는 생각으로 그녀 곁으로 다가가자 그녀도 나를 쳐다보며 옷매무시를 다시 한번 만지는 것이 그 사람 같았다.

“저 혹시 유정미씨 아닌가요?”

“아닌데요.”

‘휴~~다행이다’

나는 웨이터에게 유정미라는 여자분 혼자 오면 2층으로 안내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2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항상 소개팅에 나가면 느끼는 것이지만 먼저 도착해 앉아서 물 한잔 할 때의 긴장감은 정말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잠시 후 길어야 5분에서 10분 후면 사람을 만난다는 기대감과 함께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어떻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까? 그 사람이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지? 오만 잡생각이 머리를 뒤흔든다. 이런 잡생각들로 5분정도 시간을 보냈을까? 2층 계단으로 웨이터가 한 아가씨를 모시고 내 자리로 향하고 있다.

‘아, 저 사람이구나. 아까 1층에서 잘못 만났던 여자보다 괜찮은데, 하긴 선배 수준이 있지 저 정도는 해 줘야지’하는 만족감과 선배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좀 늦었지요.”

“아닙니다. 저도 조금 전에 왔어요.”

아... 이 얼마나 상투적인 멘트란 말인가. 소개팅은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와서 기다려야 하고 여자는 당연히 약속시간 보다 5~10분 늦은 것이 무슨 사회 통념처럼 되어있다. 하긴 헌법재판소에서도 관습법 운운하는 이 시대의 그 통념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나는 자리에 앉아 또, 간단하게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호구조사를 하는 중에 우연히 그녀가 나와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대화가 좀 쉽게 풀린다. 처음 만남에서 대화의 공통주제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공통된 주제만 있다면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는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나와 같은 대학을 나왔을 뿐, 대학에 대해 뭔 얘기를 할 게 없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 수많은 소개팅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를 가지고 학교엔 관한 얘기와 함께 ‘이 어려운 시기에 좋은 직장 취직하셨다. 정말 공부 잘하셨나 보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남들이 질투 하겠다’는 등 그녀에 대한 칭찬을 입에 거품 물면서 늘어놓았다.

그만큼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거의 식사를 마치고 소개팅이 마무리되어가는 시간. 그녀의 눈치가 썩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대로 물러 설순 없다. 어떻게 잡은 소개팅 기횐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 뭔가 강력한 걸 한방 날려 줘야 한다. 용기 내라. 우수한!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 다고 하는 옛말이 있지 않냐. 어른들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먹는다고 했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다’

나는 정말 큰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저... 정미씨! 저 딱 3번만 만나 주십쇼. 솔직히 정미씨가 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거 압니다. 하지만, 소개시켜준 사람 얼굴 봐서라도 3번만 만나 주십쇼. 오늘 이 자리를 주선한 분이 제 선뱁니다. 물론 정미씨도 아는 분 일거구요. 그럼 그 사람이 우리 두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해줬다는 것은 나나 정미씨가 선배가 보기에는 괜찮은 구석이 있으니까 소개 시켜준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서두를 꺼내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약간 놀라는 기색과 함께 조금은 내말에 동조하는 눈치였다. 나는 말을 이었다.

“저 남들보다 피부도 검고, 얼굴도 그렇게 썩 잘 생긴 얼굴 아니라는 거 잘 압니다. 솔직히 이런 소개팅 자리에서 길어야 2~3시간 얘기 나누고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외모밖에 더 알겠습니까. 저란 놈 생긴 건 이래도 괜찮은 매력이 있는 놈입니다. 딱 3번만 만나 봐 주십쇼. 3번을 만났는데도 제가 그쪽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그때는 깨끗하게 물러나겠습니다.”

그녀가 내 요구를 받아 줄지 말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최대한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 봤다.

“글쎄, 조금 당황스럽네요. 저도 나이가 있으니까 소개팅 해볼 만큼 해봤는데 이렇게 대 놓고 말씀 하시는 분은 처음이네요. 너무 급작스러운 얘기라서 조금 생각해 볼 시간을 주세요.”

그래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구나. 그렇다면 더 밀어붙이자.

“솔직히 이렇게 얘기 하는 제 자신이 그렇게 초라 할 수 없습니다. 꼭 이렇게 까지 해서라도 사람을 만나야 되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요. 속으로 수십 번 갈등하다 정말 용기 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했을 때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제 부탁을 들어 주면 고맙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또, 어떨까 하는 두려움도 있구요. 하지만 제 솔직한 심정을 얘기 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이렇게 용기를 내봤습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나서 그녀가 웃는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우면서 살짝 웃어 보인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알았어요. 부탁 들어 드릴께요.”

‘아...정말 옛말이 맞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용기 내서 내 마음을 고백하니 통하는 구나’ 이렇게 그녀와 다음에 주말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지난번 평택에서 돌아올 때 내 눈가에 흐르던 뜨거운 것이 다시 흐르는 것을 느꼈다.

‘꼭 이렇게 해서 여자를 만나야 되나. 내가 그렇게 별로란 말인가? 나도 남들 나오는 대학 다 나왔고 그것도 모자라 대학원까지 졸업했는데. 직장도 남들이 볼 때는 괜찮다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내가 무엇이 모자라단 말인가?’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보다 나를 낳아 주시고 지금까지 길러주신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들 자식이 이렇게 밖에서 여자들한테 무시당하고 다니는 것을 아실까. 만약 이 사실을 안다면 부모님들 마음은 어떨까. 정말 심난한 마음이었다. 평택에서 돌아올 때처럼 많은 눈물은 아니지만 그 것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럼 이후 그녀와의 만남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할 거다. 하지만 조금 머리를 굴려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그때 잘 됐으면 내가 지금 이 시점에 이런 글이나 쓰고 있겠는가? 나의 로맨스, 연애 얘기를 쓰고 있겠지...

그녀에게서 만나기로 한날 문자가 하나 날라 왔다.

‘미안한데요. 바빠서 제가 못나갈 것 같네요’

이게 그녀와는 끝이었다.

더 구차하게 매달리는 것은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저 그 문자를 받고 내 존재의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그녀와는 그걸로 끝내기로 한 것이다.

또, 한번의 실패를 기록하며... 잊기로 했다.

오늘의 소개팅 원칙 하나.

처음 만남에서 너무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인 자세는 무조건 피해라. 마음에 든다고 해서 너무 매달리면 그쪽에서 부담감을 느껴 피할 것이다. 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소극적이거나 재미없이 시간을 보낸다면 소개를 주선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마음에 들더라도 ‘저 사람이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야 아닌 거야’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도록 알듯 말듯하게 더 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도를 지켜야 한다. 혹 잘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행동을 취할 경우 소개팅을 주선해준 사람 다음에 또 소개팅 주선 해줄 수 있다. 그렇다면 최대한 예의를 지켜 같이 있는 동안만큼은 최선을 다해 주자. 그러면 다음에 분명히 좋은 만남의 자리가 다시 생길 것이다.

이미지=디트뉴스24 제공

▶'약백이' 총각의 101번 맞선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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