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서울]영화 ‘사마리아’와 선유도공원

  • 입력 2004년 11월 26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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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정수장 시설을 철거하지 않고 재활용해 공원으로 꾸민 한강 선유도공원은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 나무, 강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 마치 고대의 폐허를 걷는 듯한 정취를 풍긴다. 영화 ‘사마리아’에서 재영(서민정·왼쪽)과 여진(곽지민)은 이곳에서 남자들에게 연락을 하며, 성관계를 가진다. 장강명기자
옛 정수장 시설을 철거하지 않고 재활용해 공원으로 꾸민 한강 선유도공원은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 나무, 강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 마치 고대의 폐허를 걷는 듯한 정취를 풍긴다. 영화 ‘사마리아’에서 재영(서민정·왼쪽)과 여진(곽지민)은 이곳에서 남자들에게 연락을 하며, 성관계를 가진다. 장강명기자
파격과 극단으로 만드는 영화마다 화제를 불러일으켜 온 김기덕 감독은 영화를 빨리 찍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청소년 성매매를 소재로 다룬,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사마리아’는 김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초스피드로 촬영된 작품이다. 제작에 걸린 시간은 채 한 달도 안됐으며, 실제 촬영은 지난해 10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불과 10여일 만에 끝났다.

빠듯한 일정으로 영화를 만들다 보니 그때그때 닥쳐서 촬영장소를 섭외하거나 한 곳에서 여러 장면을 찍곤 했다. 영화 뒷부분의 시골 여행 장면은 제작진이 강원도로 가면서 좋은 장소가 나올 때마다 그때그때 촬영했다고 한다.

도시 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곳은 한강에 떠 있는 선유도공원(서울 영등포구 양화동). 영화 앞부분에서 여진(곽지민)과 재영(서민정)이 놀러가는 곳, 두 여고생이 상대방 남자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곳, 영기(이얼)가 살인을 저지르는 곳 등이 모두 선유도공원이다.

공원관리실 직원조차 “후다닥 찍고 가서 어떻게 찍었는지 우리도 잘 모른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영화 속의 선유도공원은 급히 찍었다는 말이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구석구석이 자세히, 또 아름답게 나온다.

선유도공원은 2000년 12월에 폐쇄된 선유정수사업소의 시설물을 철거하지 않고 그 위에 담쟁이 줄사철 등을 심고 조경을 해서 만든 공원이다. 걷다 보면 고대의 폐허 속에 있는 것 같은 독특한 정취가 난다. 처음 공원을 찾은 사람은 콘크리트가 이렇게 낭만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영화 첫 부분에서 여진과 재영이 기둥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곳은 공원 내 동쪽에 있는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 시설의 콘크리트 상판을 들어내고 30여개의 기둥에 담쟁이를 심어 열주(列柱)가 있는 정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영기가 딸과 성관계를 한 남자를 따라 들어가 살해하는 장소로 등장하는 화장실은 농축조와 조정조를 재활용해 만든 곳이며, 여진과 재영이 성매매 남성들과 통화를 하는 ‘시간의 정원’은 원래 약품침전지였다.

두 여고생이 옆에 나란히 앉아 어깨동무를 하는 청동상은 원래 공원 내 한강전시관 앞에 있었으나 파손돼 올해 초 철거했다. 갤러리와 휴게공간이 있는 한강전시관은 원래 송수펌프실이었다.

영화에는 낮 장면만 나오지만 선유도공원은 서울 최고의 야경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특히 한강 최초의 보행자 전용다리인 선유교는 밤이면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투사조명으로 마치 신선도(神仙圖)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가 난다. 밤에도 개장한다.

빼어난 조경에다 원래의 시설을 재활용한 설계 등을 인정받아 세계조경가협회 동부지역회의 조경작품상과 미국조경가협회의 디자인상, 한국 건축가협회상 등을 받았다.

양화대교 강북에서 강남 방향 인도에 선유도로 빠지는 길이 있다. 한강시민공원 양화지구에서 선유교를 통해 들어갈 수도 있다.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과 6호선 망원역에서 걸어서 10∼15분 거리. 공원 내에선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수 없다. 주차공간이 없어 승용차를 갖고 가면 곤란하다.

인터넷 홈페이지 http://hangang.seoul.go.kr/map/sunyudo.html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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