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法’ 준법사례 아니다… 헌재, 교과서 오류 지적

  • 입력 2004년 11월 7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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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셨다는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준법정신 강조를 위한 사례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교육인적자원부에 교과서를 고쳐 달라고 7일 요청한 내용의 일부다.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결정,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 등으로 주목받아 온 헌법재판소가 이번에는 초중고교 사회 교과서의 헌법재판 관련 오류와 미비점 등을 찾아내 교육부에 수정을 요청했다.

헌재는 지난해 11월 헌법연구관들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1년 가까이 초중고교 사회 교과서 15종 30권을 검토했다.


헌재에 따르면 이들 교과서에는 헌법과 기본권, 헌법재판 등에 대한 설명 가운데 잘못된 부분이 곳곳에 있을 뿐 아니라 특히 고교 교과서에는 헌법재판 기능에 대한 소개가 전혀 없다. 다음은 헌재가 지적한 주요 내용.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개인이 원하는 직업에 대한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근로의 자유’로 잘못 기재돼 있다.

교과서는 또 법원의 종류 부분에서 헌재를 가정법원 등과 같은 특수법원의 일종인 것처럼 잘못 묘사했다.

“우리나라에는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고등법원, 지방법원이 있다. 그리고 가정문제를 다루기 위한 가정법원 등과 같은 특수법원을 따로 두고 있으며, 법률이나 사회제도 등이 헌법에 맞는지를 판정하는 헌법재판소도 있다”고 돼 있는 것.

헌재는 이 부분을 “우리나라에는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그 아래에 고등법원, 지방법원, 가정문제를 다루는 가정법원 등이 있다. 이 같은 일반 법원과는 별도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국가가 침해하였는지,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등을 판정하는 헌법재판소가 있다”로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한 교과서는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시고 숨진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준법정신을 강조하기 위한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적법절차가 강조되는 오늘날의 헌법체계에서는 준법이란 정당한 법, 정당한 법집행을 전제로 한다”며 “이 사례를 준법정신과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이어 “과거 권위주의정권 때는 헌법을 여러가지 법 중 하나로 대접했고 ‘국민의 기본권’을 공동체를 위해 양보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했다”며 “이 때문에 교육이 권위주의 정권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준법정신이 잘못 기술되고 강조됐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헌재는 또 모 교과서가 ‘대쪽 같은 법질서의 나라 싱가포르의 예외 없는 법 집행’이란 제목으로 소개한 사례에 대해서도 “적절한 예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해당 사례는 미국인 대학생이 싱가포르에서 곤장형을 선고받자 미 대통령이 사면을 요청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이 집행됐다는 내용.

헌재는 “예외 없는 법 집행을 강조하는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태형·곤장형은 오늘날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형벌로 인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예로 든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고교 교과서=‘법과 사회’ 교과서에는 헌재에 대한 소개나 헌재의 구성과 권한, 헌법재판의 종류와 절차에 대한 아무런 소개도 없다. 특히 탄핵심판, 권한쟁의심판, 정당해산심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이와 관련해 헌재는 “국가생활과 법의 토대가 되는 최고 규범은 헌법이며 기본권 보장과 헌법보장의 최후의 보루는 헌법재판소”라고 전제한 뒤 “헌법 재판이 활성화되고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 주는 생활규범으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학생들이 헌법재판제도에 대해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에 헌재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헌법재판소가 교육인적자원부에 수정을 요청한 주요 내용
초등학교
교과서 내용헌재의 의견
“행정재판은 행정기관이 한 일 때문에 개인이 손해를 입었을 때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이다.”(6학년 2학기 ‘사회과 탐구’ 42쪽)“행정재판은 행정기관이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해 개인이 손해를 입었을 때, 그 행위를 무효로 하기 위한 재판이다.”
“근로의 자유/개인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49쪽)“직업선택의 자유/∼”
“우리나라에는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그 아래에 고등법원, 지방법원이 있다. 그리고 가정문제를 다루기 위한 가정법원 등과 같은 특수법원을 따로 두고 있으며, 법률이나 사회제도 등이 헌법에 맞는지를 판정하는 헌법재판소도 있다.”(39쪽)“우리나라에는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그 아래에 고등법원, 지방법원, 가정 문제를 다루기 위한 가정법원 등이 있다. 위와 같은 일반법원과는 별도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국가가 침해하였는지,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판정하는 헌법재판소가 있다.”
중학교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셨는데 이는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것.”(D사, S사 사회 교과서 중 ‘소크라테스의 죽음’ 부분 )“실질적 법치주의와 적법절차가 강조되는 오늘날의 헌법체계에서는 준법이란 정당한 법, 정당한 법집행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 일화는 준법정신을 강조하기 위한 사례로서보다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형식적 법치주의의 비교토론을 위한 자료로서 소개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미국인 대학생이 싱가포르에서 곤장형을 선고받자, 미 대통령이 사면을 요청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이 집행된 사례는 예외 없는 법 집행을 강조하는∼.”(D사가 ‘대쪽같은 법질서의 나라 싱가포르’란 제목으로 든 준법정신 사례)“예외 없는 법 집행을 강조하는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태형·곤장형은 오늘날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형벌로 인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예라고 보기 어렵다.”
고등학교 ‘법과 사회’ 교과서에는 기본권 침해 구제 제도에 대한 소개 없음.
이에 대한 헌재의 의견은 “국가 생활과 법의 토대가 되는 최고 규범은 헌법이다. 그리고 기본권 보장과 헌법 보장의 최후의 보루는 바로 헌법재판소이다. 현행 교과서에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소개나 헌법재판소의 구성과 권한, 헌법재판의 종류나 절차에 대한 아무런 소개나 이해가 없다. 특히 탄핵심판, 권한쟁의심판, 정당해산심판에 대한 단어조차 언급이 없다.”
검토 대상 교과서는 초등학교 1종, 중학교 9종, 고등학교 5종 등 사회 관련 15종 30권.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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