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두 고교생 ‘살신성인’…물에 빠진 교회누나 구하고 숨져

  • 입력 2004년 8월 19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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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속에서 내 등을 밀어 주던 너희 둘의 체온이 지금도 생생하구나….”

19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명지병원 영결식장.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고 숨진 두 남학생 후배의 영전에 보내는 장모양(18·서울 모여고 2학년)의 조사(弔辭)가 낭독되자 영결식장을 메운 고교생들은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장양을 구하고 숨진 두 학생은 경기 고양시 주엽공고 1학년 이종원군(17)과 무원고 1학년 이두용군(17).

같은 교회에 다니는 두 이군과 장양은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에서 열린 교회 하계수련회에 참가해 13일 오후 5시반경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높은 파도가 닥쳐 모두 휩쓸렸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당황한 장양이 비명을 지르며 구조를 요청했다.

두 이군도 잠시 당황했으나 가까스로 땅에 발이 닿는 상황이어서 침착하게 장양에게 다가가 손과 발로 장양을 얕은 쪽으로 밀어내려 했다. 곧 파도가 두 차례 더 밀려들어 두 소년도 서 있기 어려운 상태가 됐지만 힘을 모아 장양을 해안으로 밀어냈다.

덕분에 장양은 누군가 던져준 튜브를 붙잡아 가까스로 물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장양을 밀어내는 반작용으로 해안에서 멀어지고 힘이 빠진 두 소년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순식간의 일이라 지도교사들도 손을 쓰지 못했고 높은 파도는 두 소년을 삼킨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종원군의 시신은 13일 오후 7시50분, 두용군의 시신은 15일 오전 해안에서 발견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두 사람의 친구 60여명이 참석해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친구 문건희군(17)은 “종원이와 두용이는 평소에도 친구들을 먼저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며 “그토록 착한 친구들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흐느꼈다.

사고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 장양은 이날 두 학생의 부모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나를 밀어 준 종원이와 두용이를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것”이라며 “둘의 은혜를 잊지 않으며 정직하게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두용군의 부친 이왕재씨(45·경기 고양시)는 “앞서간 자식이 원망스럽지만, 자신을 버리고 남을 구한 희생정신이 대견하다”며 “하늘나라에서 혼자 외롭지나 않을지…”라고 말을 맺지 못했다. 고양시는 두 학생에 대한 의사자(義死者) 지정 신청을 검토 중이다.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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