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大병원 노조 “산별협약 강요땐 보건의료노조 탈퇴”

  • 입력 2004년 8월 2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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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노조가 ‘산별노조 합의사항을 개별노조에서 재협상할 수 없다’고 명시한 산별협약의 폐기를 요구하며 ‘조건부 산별노조 탈퇴’를 결의해 노동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단위노조가 상급노조에 대해 산별협약의 내용을 문제삼아 조건부 탈퇴라는 ‘협박카드’를 빼든 것은 노동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는 “어렵게 얻어낸 산별합의를 무시하는 대형병원의 무책임한 태도”라며 강경대응 방침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올해 첫 산별총파업 후 산별협약을 이뤄낸 보건의료노조가 자중지란에 빠지는 등 ‘노(勞)-노(勞)’ 갈등이 심화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산별교섭 무용론’이 또다시 제기될 전망이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지난달 29일 조합원 투표 결과 89.9%가 ‘산별협약 10조2항(임금, 휴가 및 수당, 근로시간 등은 산별협약이 지부협약에 우선한다)이 폐기되지 않으면 산별노조를 탈퇴한다’는 데 찬성했다고 2일 밝혔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이 같은 결의에 대해 “이 조항이 지부교섭권을 원천 봉쇄한 독소조항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영여건이 좋은 우리 병원은 더 좋은 조건으로 임단협을 할 수 있는데 산별교섭 때문에 못했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게 노동계의 지적.

이에 대해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여건이 좋은 병원의 노조는 좀 양보하고 대신 노조의 단결력이 약하고 영세한 병원의 임금 등을 끌어올려 근로조건 격차를 줄이자는 게 산별교섭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8월 중 산별교섭 평가과정에서 구체적 대응방침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내심 서울대병원 노조가 산별합의를 무시하고 계속 파업을 하는 등 산별교섭의 성과를 훼손시켜 온 데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조만간 회의를 열어 서울대병원 노조에 대한 중앙 차원의 제재 방침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의료노조 인터넷 게시판엔 서울대병원 노조를 비난하는 측과 옹호하는 측이 설전을 벌이는 등 내부 갈등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한편 병원협회 관계자는 “노동계 내부에서조차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산별교섭의 무용론을 재확인시켜 준 것”이라며 “시간과 교섭비용을 가중시키는 산별교섭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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