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山河 불타도 비석 남으리”…보각국사碑 700년 잠 깨다

  • 입력 2004년 7월 9일 20시 15분


서지학자 박영돈씨가 보각국사비의 탁본을 설명하고 있다. -군위=이권효기자
서지학자 박영돈씨가 보각국사비의 탁본을 설명하고 있다. -군위=이권효기자
‘삼국유사’를 지은 보각국사 일연(普覺國師 一然·1206∼1289) 스님의 일생을 기록한 보각국사비(보물 428호) 내용이 700여년 만에 확정돼 비석으로 재현된다.

황패강(黃浿江) 단국대 명예교수 등 삼국유사 연구자와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등 8명은 9일 비석이 있는 경북 군위군 고로면 인각사에서 회의를 열고 그동안 흩어져 있던 탁본을 판독한 내용을 종합해 비문을 확정했다.

보각국사비는 일연 스님이 입적(1289년)한 6년 후인 고려 충렬왕 21년 때 왕명을 받아 제자들이 세웠으나 훼손돼 당초 2m 높이에서 지금은 120cm가량으로 줄었다. 앞뒷면 합쳐 4500여 자이던 비문이 닳아 지금은 400여 자만 판독이 가능하다.

서지학자 박영돈(朴永(돈,조)·68·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는 “부분적인 탁본을 최대한 모아 뜻을 해독한 것”이라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에서 뜻을 확정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석의 앞면에는 일연 스님의 일생이 자세하게 정리돼 있고 뒷면에는 스님의 종교적 체험과 입적 당시의 상황, 제자들의 이름 등이 기록돼 있다. 병든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승려로서 최고의 직위인 국존(國尊)을 사직하고 인각사에 내려온 이야기도 담겨 있다.

비문의 마지막은 “겁화가 거세게 일어나 온 산하를 불태우더라도 이 비석은 남아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적혀 있다. 이는 당시 중국 원나라의 침략으로 혼란한 상황 아래서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통해 민족정기를 세우려 했던 마음을 담은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인각사 상인(常仁) 주지스님은 “오랜 세월 훼손된 채 남아 있어 안타까웠는데 다행”이라며 “삼국유사를 쓴 스님의 정신이 오래도록 우리 민족과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과 군위군은 확정된 비문을 토대로 내년까지 비석을 재현한 뒤 2006년 6월 일연스님 탄신 800주년에 맞춰 제막할 계획이다.

군위=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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