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동서남북/공무원-건설업체 또 뇌물 스캔들

  • 입력 2004년 6월 24일 2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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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공순위 1355위인 조그만 건설회사가 20명이 넘는 공무원 등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한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공무원들의 뇌물 수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경찰이 전남 화순군 소재 T건설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것은 16일. 이 회사가 고의로 부도를 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뇌물 장부’를 발견했다.

경찰은 2001년 2월부터 2003년 말까지 회사자금 출납내역을 기록한 이 장부에 130여 차례 사용처가 분명치 않은 항목을 확인하고 조사해 뇌물상납 고리를 밝혀냈다.

현재 수사 대상에 오른 공무원은 화순군청이 과장급 2명을 포함해 11명, 농업기반공사 화순지사 8명, 한국도로공사 직원 4명, 강진군청 1명 등이다. 또 지방 일간지 기자 3명도 부실공사 보도 등을 미끼로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지금까지 파악한 뇌물 액수는 1억여원. 그러나 달아난 이 회사 사장 김모씨(62)가 회사 비자금 6억3000만원 가운데 2억6000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김씨가 검거되면 뇌물 액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아 챙긴 수법은 대담하면서도 치밀했다.

이들은 공사 규모에 따라 수차례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300여만원까지 받았다. 휴가비, 명절 떡값은 기본이었다. 관급공사의 기성금이 나오거나 각종 감사나 현장점검을 하는 날은 이른바 ‘수금하는 날’이었다.

뇌물은 건설현장이나 건설사 사무소, 심지어 화순군청 청사 내에서 전달됐고 모 공무원은 자신의 부인이 운영하는 꽃집에서 받기도 했다.

이 회사 현장소장은 “가끔 회사로 전화를 해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거나 ‘상급기관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면서 “공무원들의 등쌀에 시달리면서도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공무원과 건설업체간 유착관계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관행적으로 받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공직사회에서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부정과 비리가 적지 않았다. 관행을 깨지 않는다면 공직사회의 개혁은 요원할 것이다.

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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