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층 비리… 증거 엄격하게 형량은 무겁게

  • 입력 2004년 4월 30일 19시 40분


《공직자나 사회지도층의 비리관련 형사재판 판결이 바뀌고 있다. 유죄의 증거는 엄격하게 따지되, 일단 증거가 인정되면 형량을 무겁게 선고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무죄판결과 실형선고 비중이 함께 늘어나고 있다.》

▽혐의 입증되면 중형 선고=재판부는 3월 민주당 박주선(朴柱宣) 의원이 나라종금에서 2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곁가지 혐의’였던 ‘3000만원 수수’를 이유로 징역 2년6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박 의원의 변호인은 “예전에는 3000만원 정도면 당연히 집행유예가 선고됐는데, 너무나 뜻밖의 판결이었다”고 말했다.

윤락업소 업주들로부터 1년간 31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직 경찰 간부 송모씨(46)도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군납 비리로 구속 기소된 예비역 소장 이원형씨(57)는 군납업자들로부터 1억6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에서 징역 6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과거 군 내부 비리에 연루된 장성들이 대부분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은 것과 대비된다. 이 사건에서는 다른 사안과 달리 뇌물공여자인 한국레이콤 전 회장 정모씨(49)에게도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지난달 19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는 납품편의 등을 봐주는 대가로 1억4000여만원을 받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전 총무상임이사 임모씨(59)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는 등 전현직 간부 5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애매하면 무죄=서울고법 형사5부는 1월 토지거래허가구역 안에서 부동산을 불법거래한 혐의로 기소된 정모씨 등 14명 가운데 10명에 대해 “충분한 범죄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나라종금에서 청탁과 함께 2억8000만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지난해 구속 기소됐던 염동연(廉東淵·17대 국회의원 당선자) 전 민주당 인사위원은 2월 1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염 전 위원이 돈을 받았다고 시인했지만 돈을 줬다는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의 진술이 법정에서 바뀌는 등 일관성이 없다”는 게 무죄선고 이유.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대북송금 및 현대비자금 수수 혐의 이외에 SK 등에서 1억원을 추가로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는데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최완주·崔完柱)는 “피고인 진술 이외의 보강증거가 부족하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같은 경향 때문에 무죄 판결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 1∼3월 서울중앙지법의 형사사건 무죄율은 1.32%(3263건 중 43건)로 집계돼 지난해 전국 1심 법원의 형사사건 무죄율(1.1%)보다 높았다. 9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전국 법원의 평균 무죄율은 0.78%였다.

서울중앙지법 민형기(閔亨基) 형사수석부장은 “온정주의적 판결이 오히려 처벌에 대한 내성을 키운 결과를 초래한 것이 사실”이라며 “증거에 약간이라도 의심이 들면 배척하는 대신 유죄로 입증되면 형벌권을 엄정하게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대희(安大熙)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법원 판결경향에 대해 “법원 판결이 증거인정과 형량을 다 같이 엄격하게 하는 선진국형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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