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 이후]黨구한 박근혜, 결속다지기 시험대

  • 입력 2004년 4월 16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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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 전날인 14일 저녁 부산역 광장 지원유세를 마친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다음날 지역구(대구 달성) 투표를 위해 대구로 돌아왔다.

마중 나온 당 관계자들은 예정에 없던 대규모 군중집회를 준비했다. 대구에서 한 번 더 지원유세를 해달라는 취지였다.

보고를 받은 박 대표는 즉각 차를 돌려 지역구 내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갔다. 선거 전날인 만큼 자칫 유세장에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이 쏟아질 것을 우려해서였다.

박 대표의 ‘원칙을 중시하는’ 리더십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1998년 보선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 뒤 특히 정치개혁에 남다른 집착을 보였다. 역설적이지만 이 과정에서 쌓인 박 대표의 개혁적 이미지는 이번 총선에서 당을 살려낸 동력이 됐다.

박 대표는 정치적 ‘쇼맨십’과도 거리를 두어 왔다. 실제 2002년 대통령선거 직전 위기에 몰린 이회창(李會昌) 캠프에서 국면 반전용 삭발을 건의하자 그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도 당내 일각의 탄핵 철회 요구를 일축하고 정면으로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여기엔 자신의 높은 대중적 지지도가 남다른 무기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총선을 통해 당내 입지를 굳힌 박 대표는 앞으로 ‘대통령의 딸’이란 한계를 뛰어넘는 리더십을 국민에게 보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당내 각 세력간 이해관계를 거중 조정해야 하는 본격 ‘시험대’에 올라선 것이다. 앞으로 본격화할 대권 행보를 앞두고 당내 잠재 후보군의 ‘보이지 않는 견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아무튼 박 대표의 입지 강화로 당내 세력의 일대 재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유연한 대북정책을 공약으로 내거는 등 방향 전환을 시사한 것이 당을 기존의 ‘수구 꼴통’ 이미지에서 합리적 보수 세력으로 재정비하겠다는 신호탄인 셈이다. 한나라당이 이번 총선에서 여권을 겨냥해 ‘좌파’ ‘친북반미세력’ 등 이념적 공세를 펴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에 따라 박세일(朴世逸) 공동선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비례대표 당선자 교수 그룹과 동아대 교수 출신인 박형준(朴亨埈·부산 수영) 당선자 등이 당 체질 개선을 위한 주력부대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대여 공격의 전면에 섰던 일부 ‘저격수’ 의원들은 박 대표 체제하에서 당분간 2선으로 물러나 있어야 할 것 같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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