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뚫리나” 추위에 떨며 ‘SOS’

  • 입력 2004년 3월 5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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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들아, 고속도로에 갇혀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지경인데 왜 아무런 대책도 없어!”

5일 폭설이 내린 충청지역의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1만여대의 차량이 고립무원의 상태에 갇힌 가운데 여기저기서 운전자들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고립 상태는 거의 하루 동안 계속됐다.

대다수 운전자는 구조를 기다리면서 연료를 아끼기 위해 시동을 끈 채 배고픔과 추위에 떨었다. 연료가 떨어져 차량이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일부 운전자는 휴게소가 있는 주유소까지 30분이 넘게 걸어가 기름을 사오기도 했다.

이날 차량이 고립된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남이분기점∼대전 11km, 하행선 천안∼남이분기점 35km, 천안∼논산고속도로 탄천(공주)휴게소 부근 2km, 호남고속도로 하행선 회덕∼유성 11km, 상행선 벌곡∼계룡대 6km 구간.

트레일러 등 대형 차량들이 눈길 교통사고로 전복되는 등 교통사고가 잇따르면서 고속도로를 막았지만 제때 처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날 하루 이 지역 고속도로순찰대에는 평소보다 10배가량 많은 100여건의 사고신고가 접수됐다. 고속도로의 차량 정체는 이날 아침 일찍부터 시작됐다. 오전 5시40분경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옥천TG 인근에서 화물차를 포함한 차량 5대가 연쇄 추돌하면서 차량 정체로 이어졌다.

고립 상태가 계속되면서 한국도로공사와 충남도 등 인접 자치단체에는 온종일 수천통의 항의전화가 쏟아졌다. 이날 오후 충남도 도로교통과로 전화를 걸어온 40대 남성은 “아내와 딸이 대소변도 보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항의했다.

늦은 오후로 접어들수록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완전히 떨어지면 추위를 어떻게 견디느냐” “아이들이 아침부터 굶어 배고프다고 난리다” 등 전쟁 상황을 방불케 하는 호소가 쇄도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차량을 포기하고 걸어서 대피하는 사람도 많았다.

5시간 이상을 갇혀 있었다는 신모씨(34·경기 수원시)는 “도로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도로공사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충남도는 고속도로 주변의 충남 천안 연기 공주 논산 등 4개 자치단체에 긴급 지시해 고속도로에 갇힌 차량들에 간식과 음료, 연료 등을 공급하도록 했다.

한국도로공사 충청지부는 이날 오후 1차로 1500명분의 음료와 연료를 공급한 뒤 공급량을 늘려나갔다. 또 플라스틱통에 연료를 담아 기름이 떨어진 차량들에 긴급 지원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대전국립묘지에 가는 길이었다는 기노현씨(30·경기 용인시)는 “오전 9시에 출발해 10시50분경 옥산휴게소 5km 전방에서 갇혀 오후 11시까지 그대로 있었는데 먹을 것은 구경도 못했다”고 말했다.

도로공사측은 고속도로 정체구간 가운데 반대편 도로가 뚫린 경우 되돌아 나갈 수 있도록 중앙분리대 제거에 나섰다. 공사측은 이날 저녁 옥산(충북 청원군)휴게소 부근의 중앙분리대를 처음으로 제거했다.

그러나 분리대를 제거한 뒤에도 차량 고립은 바로 해소되지는 않았다. 차량들이 정체해 있는 사이 눈이 바퀴 꼭대기까지 차올라 자동차마다 눈을 제거하고 차량을 빼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차량 고립은 6일 새벽에야 겨우 해소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5일 오후 2시부터 경부고속도로 상하행선 목천∼신탄진IC 구간과 중부고속도로 상하행선 오창IC∼남이분기점 구간 등에 대한 진입 차단 조치도 이때까지 계속됐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당초 5일 저녁까지 제설작업을 모두 마치려고 했으나 눈이 계속 내리는 바람에 속수무책이었다”고 밝혔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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