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한국사회 화두 돈]대박…"지긋지긋해도 희망 여전"

  • 입력 2003년 12월 30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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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돈’과 인연이 깊었던 세 사람이 새해에는 돈 때문에 우는 사람이 없길 기원하며 30일 돈더미 위에 누워 환히 웃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용불량의 굴레에서 벗어난 김인수씨, 종로구 로또복권 판매점 운영 안분순씨, 국민은행 마포역지점 세일즈팀장 김용수씨. -김미옥기자
올 한 해 ‘돈’과 인연이 깊었던 세 사람이 새해에는 돈 때문에 우는 사람이 없길 기원하며 30일 돈더미 위에 누워 환히 웃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용불량의 굴레에서 벗어난 김인수씨, 종로구 로또복권 판매점 운영 안분순씨, 국민은행 마포역지점 세일즈팀장 김용수씨. -김미옥기자
《2003년은 돈의 해였다. 연초부터 로또복권 열풍이 몰아쳐 너도나도 ‘대박의 꿈’을 키웠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가계대출 총액은 날마다 최고치를 경신했다. 덩달아 360여만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고, ‘빚과의 전쟁’을 치르는 사람도 늘었다. 대선자금 수사, ‘차떼기’ 등 정치권에서 들려온 수백억 단위의 ‘돈놀음’은 서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돈의 현장’ 한가운데 있었던 3명을 만나 한 해를 보내는 소회를 들어봤다.》

▽탈(脫)신용불량 성공=“돈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 돼버려서….”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사업실패로 1억원을 빚진 김인수(金仁洙·34)씨는 올 8월 6년 만에 ‘신용불량’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김씨는 카드설계사를 하면서 빚을 지게 되자 일용직 노동자로 변신해 하루에 2, 3일치의 일을 하는 등 악착같이 살았다.

너무 힘들어 한강다리 위에도 서보는 등 3번이나 심각하게 자살을 고려했지만 끝내 참고 견뎌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었다.

김씨는 이젠 돈이라면 지겹다 못해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차떼기로 돈을 받았다는 검찰 수사결과가 나왔을 때 여의도 한나라당사로 사과상자 40개를 실은 트럭을 몰고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씨는 “자꾸 욕심을 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걸 6년간 신용불량자로 지내며 깨달았다”며 “먹고 살 만큼만 돈이 있으면 만족”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불합리한 신용불량자 제도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을 위해 새해에는 개인회생제도인 신용회복법이 꼭 제정되길 바라고 있다.

▽대출 담당의 단상=국민은행 마포역지점에서 영세민 전세자금, 근로자주택자금대출을 담당하는 김용수(金龍洙·42) 세일즈팀장은 “우대 금리로 VIP실에서 돈을 빌린 사람도 많아졌지만, 신용불량자이거나 ‘돌려막기’를 하던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더욱 힘들었던 한 해였다”고 회고한다.

“9월쯤 신용보증기금 재원이 고갈되면서 서민대출이 어려워지자 창구에서 욕을 많이 먹었어요. 직원을 붙잡고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도 매일 꼭 있었고….”

경기가 나빠지자 김씨는 팀원들과 함께 한 달에 2, 3번 쉬는 토요일에도 출근해 연체자를 상대로 대출상환을 독촉하러 다니기도 했다.

“2000만원 정도 빚을 진 40대를 찾아 구로동 다세대주택의 단칸방에 갔는데 돈 갚으라는 말도 못 꺼내고 라면박스를 주고 나온 적이 있었죠. 가족은 이미 다 도망가 버렸고 혼자 남은 아저씨가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팀원들도 이런 경험 다 있습니다.”

김씨는 새해에는 서민들이 돈에 치이지 않고, 행복과 화목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로또 속의 사람들=안분순(安粉順·39)씨는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서 로또복권판매점을 운영한다. 8월에는 1등 당첨자를 배출, 이름모를 구매자에게 ‘50억원 대박’을 선사하기도 한 안씨는 3등 당첨자(6개 숫자 중 5개를 맞힌 사람)를 바라보는 심정이 착잡했다고 한다.

“3등이 되신 분들은 수백만원을 받지만 기쁨보다는 안타까움과 괴로움을 가장 먼저 표시하더군요.”

당첨 전이라면 무슨 말을 못할까.

“다들 그러세요. 1등 되면 우선 대궐같이 좋은 집 한 채 사고, 그 다음엔 이웃돕기 성금으로 최소한 몇억원은 낼 거라고….”

초기에는 10만원씩 하루도 빼놓지 않고 로또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지만 요즘은 점점 ‘정상적인 복권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안씨는 말한다.

“1만원이나 2000원이나 확률상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여러장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어요.”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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