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기지 조난]"살아야 한다" 동료 끌어안고 13시간 사투

입력 2003-12-09 19:04수정 2009-09-28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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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동료 대원을 찾아 나섰다가 남극 세종과학기지 부근 바다에서 조난당해 숨진 전재규 연구원의 아버지 전익찬씨가 아들의 사진을 붙들고 울음을 삼키고 있다. -영월=연합
《7일 오후 8시50분(이하 현지시간) 남극의 차디찬 바다에서 조난당한 뒤 13시간 이상의 사투(死鬪) 끝에 8일 오전 10시20분 극적으로 구조된 남극 세종기지 정웅식 연구원(사진). 그는 9일 본보와의 국제전화에서 “동료들이 살아남은 게 고맙지만 동생처럼 따르던 전재규 연구원이 숨진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양대 지구해양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정 연구원은 1년간 남극 세종기지에서 남극 해수와 곤충 등을 연구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남극에 도착했다. 》

―조난당시 상황은….

“대원 5명이 7일 보트를 타고 아들리섬 해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섬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김홍귀 대원은 뒤집혀진 보트 위로 올라가 무선 교신을 하다가 파도에 떠밀려 다시 물 속으로 떨어졌다. 얼음같이 찬 물속에서 1∼2분 정도 지나니까 다리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짠 바닷물이 입이고 눈이고 가릴 것 없이 밀려들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와와’ 하며 악을 쓰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형’ ‘웅식아’ 하는 동료들의 목소리도 어렴풋이 들렸다.”

―어떻게 아들리섬에 올랐나.

“한 10여분 정도 정신없이 헤엄을 쳤다. 어떻게 뭍에 올랐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해안가에 몸을 일으켰지만 눈보라 때문에 곧 쓰러졌다.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기조차 힘들고 눈물이 핑 돌았다. 고함을 치고 악을 쓰자 눈보라를 뚫고 동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냈지만 전재규 대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보라가 너무 치고 탈진을 해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피소까지 간 상황은….

“위치를 확인하는 GPS시스템이나 무전기는 모두 물에 빠져 아무런 장비가 없었다. 아들리섬 지리를 잘 아는 김홍귀 대원이 ‘조금만 가면 대피소가 있다’고 대원들을 격려했다. 바닷물을 많이 먹어서인지 갈증이 났다. 탈진을 하지 않기 위해 눈을 한 주먹씩 먹고 기력을 잃은 동료들에게도 서로 먹여줬다. 물에 젖은 옷은 천근만근이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눈보라가 거세 한걸음도 옮기기 어려웠다.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거나 ‘조금만 가면 살 수 있다’며 서로를 격려하며 4명이 손을 꼭 붙들고 걸었다. 걷다가 쓰러지다가를 반복하면서 한 걸음씩 옮겼다. 1km도 채 안 되는 거리를 3시간 넘게 걸었다. 멀리서 컨테이너로 만든 대피소가 보였다.”

―대피소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컨테이너 대피소에는 다행히 가스히터, 가스레인지 등 가열기구와 과일통조림 2통, 비스킷 1봉지가 있었다. 2층 침대 4개가 있었지만 모포가 2장밖에 없어 2명씩 짝을 지어 서로 부둥켜안고 추위를 피했다. 먼저 실종된 세종2호 동료들과 파도에 휩쓸린 전재규 대원 걱정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한 배를 타고 조난당한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았다.”

―어떻게 구조됐나.

“8일 오전 김홍귀 대원이 실종된 전재규 대원을 찾으러 나갔다가 시신을 발견했다. ‘해안가 바위 위에 놓여 있었다’고 했다. 시신의 위치확인만 하고 돌아와 대피소에서 기다렸다. 오전 10시쯤 러시아 구조대원이 대피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심경은….

“동생처럼 따르던 전재규 대원이 숨졌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아직도 어딘가 살아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동료들이 살아준 것은 너무 감사하다. 부모님께 더 잘 해드릴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 같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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