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충돌' 부안을 가다]“인적끊긴 밤거리 나가기 겁난다”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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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핵폐기장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던진 화염병과 돌 등에 박살난 전북 부안예술회관 입구 유리창. 이날 화염병 시위로 예술회관 건물 내부가 불에 탔다. -부안=뉴시스
19일 핵폐기장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던진 화염병과 돌 등에 박살난 전북 부안예술회관 입구 유리창. 이날 화염병 시위로 예술회관 건물 내부가 불에 탔다. -부안=뉴시스
21일 오후 6시 전북 부안군 수협 앞. 해가 지면서 왕복 4차로 도로가 수천명의 전경으로 뒤덮였다. 일몰 후 이곳에서 117일간 계속돼 온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 반대를 위한 부안 주민들의 촛불집회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것. 경찰은 20일에 이어 이틀째 수협앞을 원천봉쇄했다.

‘핵폐기장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 소속 문규현 신부와 주민 30여명이 집회를 시도했으나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날이 어두워지자 경찰 8000여명이 교차로와 골목 등 시내 곳곳에 배치돼 부안 읍내는 계엄 상황을 방불케 했다.

▽을씨년스러운 부안 읍내=오후 7시 부안읍 상설시장 골목에는 문을 연 상점이 10곳 중 3곳 정도밖에 안됐다. 차도 곳곳에는 타이어를 태운 흔적이 남아 있었고 미처 다 치우지 못한 유리 조각도 눈에 띄었다. 공사표지판이나 버스정류장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쓰인 ‘핵은 죽음’ 등의 낙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상설시장에서 군청으로 올라가는 골목은 불을 켠 집이 하나도 없어 사람 사는 거리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상설시장에서 ‘대길분식’을 운영하는 차모씨(52·여)는 “3개월째 장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며 “군수 하나 잘못 뽑아 이 고생을 한다”고 말했다. 오후 7시 이 분식점에는 손님이 1명도 없었다.

정지원양(16·부안여중 3년)은 “전경들이 너무 무섭다”며 “경찰들이 길을 막아 학원에서 집에 가려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깊어가는 불신과 갈등=대책위는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 있는 방화를 자제해 주도록 주민에게 당부하고 있으나 성난 주민들에게 먹혀들지 않고 있는 상태”라며 “공권력에 의한 강경 대처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반발했다.

또 “읍면 단위 대책위 조직을 정비해 게릴라성 시위를 계속하겠다”며 “만약 경찰이 폭력진압을 한다면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 서재복씨(54·부안군 부안읍)는 “주민 투표 이야기는 당초 정부와 부안 군수가 먼저 제시한 것 아니냐”며 “주민들이 양보해 받아들인 연내 투표안을 이제 와서 갖가지 이유를 들어 거부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식당을 하는 김모씨(40)는 “4월에 주민 투표를 하자는 정부안은 홍보 기간을 벌자는 것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 대응=경찰은 이날 야간 방화시위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경찰력을 75개 중대 8000여명으로 늘리고 이중 33개 중대 3500명을 면사무소 등 공공시설을 경비하기 위해 면지역까지 분산 배치했다.

경찰은 방어 위주에서 벗어나 도로 검문검색을 통해 시위자를 가려내는 등 적극적으로 시위에 대처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부안읍으로 진입하는 모든 도로에 경찰을 배치하고 조명차 살수차 등 진압장비와 고성능 카메라 등 채증 장비를 보강했다.

19일의 시위와 관련해 전북지방경찰청은 연행한 주민 20명 중 11명에 대해 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부안=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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