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터넷]‘와레즈’ 북적이면 게임업체는 운다

  • 입력 2003년 11월 3일 18시 15분


PC 기반 축구게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피파(FIFA) 시리즈. 신제품 ‘피파 2004’는 국내 출시일인 지난달 31일을 며칠 앞두고 와레즈(Warez) 사이트에서 독일어판 불법복제본으로 먼저 나돌아 유통업체 EA코리아(대표 한수정)를 속 타게 했다.

이 회사가 불법복제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수십만장 이상 판매될 것으로 기대했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C&C 제너럴’이 예상외로 저조한 판매 실적을 기록한 것. 최근 PC게임 시장에 불어 닥친 불황 역시 와레즈 사이트의 불법복제물 증가와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

▽불법복제 때문에 속 타는 게임 업체들=이런 사정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1인칭 슈팅게임 ‘하프라이프2’ 개발업체인 밸브소프트웨어는 최근 이 게임의 소스코드 일부를 해킹당해 제품 출시를 내년으로 미뤘다. 현재 이 게임은 소스코드와 함께 실제 실행이 가능한 게임버전이 와레즈에서 나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프라이프2’는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게임쇼 ‘2003 E3’에서 4개 부문을 휩쓸었던 인기 게임.

이처럼 개발사의 전략 상품으로 출시된 신규 게임들이 와레즈 사이트나 파일공유 사이트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면서 게임업체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와레즈’라는 단어는 ‘where it is’를 발음 나는 대로 적은 표현으로 ‘불법복제물을 공유하는 사이트’로 통한다.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는 ‘인터넷의 다양한 프로토콜, 뉴스그룹, 월드와이드웹, FTP(파일전송프로토콜) 등을 통해 좁게는 개인간에 이뤄지는 프로그램 배포 행위에서부터 넓게는 정보를 공유하는 일체의 행위 또는 조직’이라고 이를 정의했다.

소프트웨어(SW)부터 음악, 영화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공짜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와레즈 사이트. 공짜를 찾아 나선 네티즌들 덕분에 2001년에는 ‘와레즈’란 단어가 심마니 등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에서 최고 인기 검색어로 등극했다.

하지만 지금은 성인 인증을 거쳐야만 그 결과를 볼 수 있는 금칙어 신세다. 와레즈는 불법복제로 인한 저작권 침해 문제뿐만 아니라 음란 동영상의 온상으로 청소년 정신건강에 해를 주는 ‘악의 축’으로 눈총을 받아왔다.

▽와레즈의 두 얼굴=과연 와레즈 사이트는 역기능만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와레즈 사람들’의 변론도 만만치 않다.

회원 5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둔 J 와레즈 사이트는 최근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정보공유 커뮤니티 사이트로 탈바꿈했다. 이 사이트에선 이제 더 이상 성인광고나 포르노물을 발견할 수 없다.

고1 때부터 J 와레즈 사이트 운영자인 A씨(ID:一日一up)가 ‘포르노 자료를 공유한 회원은 IP주소를 파악해 두었다가 사이버수사대의 음란자료 단속에 대한 협조공문이 오면 시간대별 IP주소를 사이버수사대측에 보내겠다’는 초강경 공지사항을 띄운 것. 음란물이나 저작권 문제가 있는 자료는 즉각 삭제하는 등 ‘지킬 것은 지키면서’ 와레즈를 순수한 정보공유 커뮤니티로 꾸려 나가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와레즈를 운영하는 목적은 상업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저 역시 고등학생 때 와레즈에서 구한 SW로 프로그래밍을 배웠습니다. 우수한 게임이나 SW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입소문이 퍼지는 곳이 바로 와레즈로 새로운 기술을 전파하고 홍보하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한때 와레즈의 대명사였던 ‘해적’ 역시 조잡하게 성인광고 창이 여기저기 뜨는 와레즈의 모습은 더 이상 아니다. 이러한 변화 바람이 다른 와레즈 사이트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

▽와레즈 단속 및 방지대책=와레즈 사이트가 홈페이지 방식에서 P2P로, 또 웹하드로 모습을 달리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그 세를 불려왔지만, 앞으로는 사정이 달라질 전망이다. 지난달 19일부터 SW 불법복제 단속반에 사법경찰권이 부여되는 등 SW 재산권 침해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 더욱 강화됐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는 앞으로 SW 불법복제 단속반의 인원을 현재의 32명에서 50여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또 내년엔 상시 단속 수사비 4억2000만원과 모니터링 요원 배치비 2억5000만원을 별도 예산으로 배정할 예정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앞으로 상시 단속을 강화하고 소규모 사업장뿐 아니라 중대형 기업까지 단속 대상을 확대해 불법복제 SW를 뿌리뽑겠다”고 밝혀 와레즈 사이트와의 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권혜진기자 hj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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