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안에 술판-도박판…관광버스인지…유흥업소인지

  • 입력 2003년 10월 22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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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가을 관광철을 맞아 21일 경북 봉화군 청량산에서 단풍관광객 18명의 목숨을 앗아간 버스 추락사고가 발생하면서 대형 관광버스의 안전을 무시한 운행 행태가 또다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관광버스는 버스회사 직원들조차 ‘달리는 시한폭탄’이라고 부를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 운행되고 있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채 원시적인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 청량산 사고도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비 불량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안전벨트 미착용이 인명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총체적인 ‘안전불감증’=강원 속초경찰서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는데도 20일 오전 혈중 알코올 농도 0.064% 상태에서 20여명의 싱가포르 관광객을 태우고 관광버스를 운전하던 이모씨(43)를 설악산 입구에서 적발했다.

4월에도 수학여행단을 태우고 혈중 알코올 농도 0.170%와 0.178%의 만취상태에서 운전을 하던 관광버스 운전사 2명이 비슷한 장소에서 적발되는 등 음주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달 초 본보 기자가 동승취재했던 한 산악회 관광버스에서는 승객들이 운전사에게 항의, 버스 3대 중 1대를 아예 ‘춤추고 노래 부르는 차’로 정하고 놀 사람들을 따로 모아 서울에서 오대산까지 달리기도 했다. 운전사와 관광객의 안전불감증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전국 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운행되는 관광·전세버스는 2만4478대로 등록된 업체만도 무려 1207개에 달한다.

이처럼 군소업체의 난립으로 경쟁이 심화돼 회사들이 노래반주기 설치 등 고객의 ‘입맛’에 맞는 편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사고 원인으로 꼽힌다.

몇 년 전부터는 6∼10인용 원형 소파와 테이블을 안전띠로 엉성하게 묶어놓고 도박도 하고 술도 마실 수 있게 한 ‘살롱 버스’와 노래반주기를 차 바닥 밑에 감추어 놓고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신종 개조버스까지 등장했다.

불법이지만 사라지지 않고 있는 ‘지입차’도 문제이다.

지입차주들은 운전도 하면서 수입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승객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웃돈이라도 조금 받으면 버스 안에서 불법 유흥과 음주가무를 용인해 주는 경우가 많다. 또 대부분의 지입차들이 폐차 직전의 버스여서 정비 등에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제도도 ‘허점투성이’=고속도로가 아닌 일반 도로에서 운전자를 제외한 승객에게 안전띠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게 할 수 있는 규정이 현행법에 없다. 관광버스는 고속버스와 달리 일반 도로를 달리는 일이 많다. 전문가들은 내리막길에서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승객들이 춤을 추면 차가 한쪽으로 쏠려 고속도로보다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처벌 규정도 솜방망이다. 가무행위와 안전띠 미착용은 범칙금 5만원과 3만원, 노래반주기 설치는 과징금 120만원, 차량 불법개조는 징역 1년 혹은 벌금 3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이 정도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버스회사나 지입차주는 거의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얘기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장동군(張東郡) 연구원은 “지입차주들은 물론 회사에 소속된 운전사에 대해서도 안전교육과 관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라며 “이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상시적인 감시와 제도 보완이 이뤄지지 않으면 버스 사고는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속초=경인수기자 sung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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