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선행학습' 초등생이 ‘大入과외’라니…

  • 입력 2003년 10월 6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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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철없을 때 공부를 최대한 많이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크면 말을 잘 안 듣거든요.”

지난달 말 서울 동작구 사당동 D입시학원 분원에서 열린 ‘초등학생이 고교 수학을 공부하는 비법 공개 설명회’. 사전에 예약한 학부모 150여명에게 대학입시반 강사는 ‘공통 수학의 정석(고교 수학참고서 이름) 초등학생반’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고교생도 힘들어하는 정석을 정말 배울 수 있을까요?”(A학부모)

“5학년생만 해도 좀 힘들지만 6학년생은 수월하게 따라옵니다.”(강사)

“우리 아이는 강의를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어 학원 강의를 위한 선행학습 과외를 따로 해야 합니다. 좀 쉬운 반도 만들어주시면 안될까요?”(B학부모)

“결국은 대입이 목표입니다. 7차(교육과정)에서는 수학이 지금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시간 날 때 어려운 공부를 해 두는 게 좋습니다.”(강사)

일부 학원들이 7차 교육과정에서 고교 2, 3학년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공부하는 심화과정을 빌미로 삼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6년 이상 앞둔 초등학생들에게 고교 과정을 가르치는 조기 대학입시 특강반을 잇따라 개설하고 있다.

대도시 학원들이 초등학생들에게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것은 흔한 모습이지만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고교 과정도 가르치고 있다.

▽조기 대입과외 실태=일부 학원들은 마치 대학입시 본고사가 부활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학생들이 선택한 과목에 대한 문제는 난이도가 어려워져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으며 초등학생은 시간이 많으므로 ‘선행학습’에 적절하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서울 강남지역의 또 다른 D대학입시 학원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한문 등을 가르치는 종합반을 만들어 초등학생들을 모집했다. 또 5, 6학년생을 위한 ‘고교 수학반’을 따로 만든 A학원은 모집 이틀 만에 이달 정원을 다 채웠다.

서울 강남지역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원어민 방문과외 영어’가 늘고 있다. B업체는 주 1회에 월 23만원, 주 5회에 월 120만원을 받는다. 초등학생 학부모들이 미국 동부와 캐나다 출신 ‘정통강사’를 소개받으려면 대기 순번을 받아야 한다.

▽조기 대입교육의 배경=2005학년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심화과정인 고교 2, 3학년 과정에서 100% 출제되며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이 국어 영어 수학 등을 입시에 반영할 것이라는 전망이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수능 문제가 6차 교육과정을 반영한 수능에 비해 난이도가 높아지고 대학들도 심층면접이나 논술 등에서 보다 심화된 지식과 문제풀이능력을 요구할 것이란 점을 학원들이 강조하고 있다.

또 일부 대학이 영어특기자 수시모집에서 토플 점수를 요구하며 ‘토플’ 시험방식이 말하기 듣기 배점이 커진 ‘신유형(IBT)’으로 바뀌는 것도 조기 과외붐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육계 반응=교육계는 초등학생 조기 대입과외 붐이 7차 교육과정의 취지에 역행하는 현상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영남대 교육학과 김재춘(金載春) 교수는 “수능에 출제될 7차 교육과정 내용들은 ‘단계별 심화학습’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면서 “초등학생에게 무리하게 선행학습을 시켜서는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범홍(李範弘) 연구원은 “2005학년도부터 심화과정이 추가되긴 하지만 전체적인 수능 난이도를 지금과 비슷하게 유지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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