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風' 1심판결 영향]‘940억 民事소송’ 한나라당 불리해져

  • 입력 2003년 9월 23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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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삼재(姜三載) 한나라당 의원 등이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예산을 빼돌려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의 선거자금으로 불법지원한 이른바 ‘안풍(安風)’ 사건에 대한 1심 재판이 23일 우여곡절 끝에 2년8개월여 만에 마무리됐다.

1심에서 강 의원 등 관련자 2명에게 거액의 추징금과 함께 중형이 선고됨에 따라 상급심의 판단이 남아있긴 하지만 강 의원은 물론 한나라당도 도덕성에 타격을 입게 됐다. 또 국가가 이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940억원 민사소송의 향배는=통상적으로 민사소송은 형사재판 결과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기 때문에 이날 유죄 판결로 인해 한나라당은 국가가 제기한 940억원의 국고 환수 민사 소송에서도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앞서 국가소송을 수행하는 검찰은 2001년 1월 강 의원 등을 기소한 뒤 한나라당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추징선고를 할 경우 강 의원 등 2명의 재산을 전부 몰수한다고 해도 손실된 수백억원의 국고를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

따라서 민사 재판부가 형사재판의 결과를 인용해 한나라당에 국고손실의 책임을 물을 경우 한나라당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 여의도 중앙당 당사와 충남 천안시 연수원 등 부동산의 ‘운명’도 불분명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 신한국당의 과실에 대해 한나라당이 책임을 져야 하는지와 정당을 국회의원의 ‘사용자’로 보고 연대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어 민사재판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아울러 만약 검찰이 민사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한나라당에 대해 강제집행 등을 통해 배상금을 받아낼지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검찰은 2001년 1월 한나라당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제기했으나 통상 민사소송에 동반되는 가압류나 가처분 신청은 하지 않았다.

▽사건 경과=‘안풍’ 사건은 검찰이 2000년 경부고속철도 차량선정 로비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뭉칫돈을 강 의원의 경남종금 2개 차명계좌에서 발견하면서 비롯됐다.

이후 검찰은 15대 총선 등에서 안기부 돈을 받은 정치인 180여명의 명단을 공개하는 등 압박수사에 나섰으나 한나라당은 정치보복이라며 강하게 반발, ‘방탄국회’로 맞섰다. 결국 검찰은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던 강 의원을 소환조사하지 않고 불구속 기소한 뒤 사건을 법원으로 넘겼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강 의원과 한나라당의 반발 등으로 파행이 거듭돼 2년8개월간 20차례 이상 공판이 열리고 재판부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한나라 “증거없이 野탄압…승복 못한다”▼

한나라당은 23일 이른바 ‘안풍’ 사건의 1심 유죄 판결에 대해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승복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진(朴振)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1년 예산의 20%에 달하는 1000여억원이 정치자금으로 지원됐다면 어떻게 안기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야당 탄압 차원에서 시작된 법원의 1심 판결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증거조사 없이 이뤄진 것으로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고 비판했다.

징역 4년과 추징금 731억원을 선고받은 강삼재 의원은 판결 직후 변호인들과 항소 계획을 협의한 뒤 언론과 연락을 끊었다. 강 의원의 소송을 전담한 이정락(李定洛) 변호사는 “안기부 계좌엔 안기부 예산 외에 다른 성격의 돈도 많이 있는데 재판부가 안기부 예산이라고 단정하는 증거가 불충분하지 않으냐”며 “안기부가 관리하는 7개 차명계좌를 전혀 보여주지 않고 전현직 국정원장의 증인신청도 거부한 상태에서 진상 규명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24일 항소할 계획이다.

그러면서도 한나라당은 ‘국고(國庫) 유용’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다시 여론화되는 데 대해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당직자는 “솔직히 우리가 누굴 탓할 입장이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법원이 중형을 선고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한나라당은 국기를 문란케 한 범죄행위에 대해 입이 10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국민 앞에 사과하고 횡령한 안기부 예산 1197억원을 국가에 반납하라”고 몰아붙였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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