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댁' 차영회씨의 이 남자가 사는 법

  • 입력 2003년 7월 3일 16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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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은 고도의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직업입니다."

인천 계양구 작전동 형제아파트에 사는 차영회씨(44)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두 아이의 아버지다.

그러나 아파트 주민들은 그를 '인천댁'이라고 부른다. 10여 년 동안 다니던 출판사의 기획업무를 그만두고 1996년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오전 6시만 되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쌀을 씻어 압력솥에 안친 뒤 국과 반찬을 만들면서 아내(38)와 아이들을 깨운다.

아침상에 네 식구가 모여 식사를 마치면 그는 회사에 다니며 가장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부인이 그날 입을 옷과 양말 등을 챙겨준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뒤 오전에는 설거지와 집안청소, 빨래 등을 시작한다. 오후에는 학교에서 돌아 온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저녁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에 간다.

달력에 영수증을 붙여가며 매일 꼼꼼하게 가계부를 적는 영락없는 살림꾼인 차씨. 그는 왜 살림을 시작했을까.

"직장을 그만 둔 뒤 1년간 하는 일 없이 놀다보니 돈이 바닥이 났어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한파 때문에 복직도 쉽지 않았죠. 결국 아내가 돈을 벌기 위해 나섰고 집안 살림은 자연스럽게 제몫이 됐어요."

살림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부인과 다투는 일이 많았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수세미를 들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차라리 가출한 뒤 막일을 하며 노숙을 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살림을 하면서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것도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그는 직접 살림을 하며 느낀 전업주부로서의 고충 등을 틈틈이 인터넷에 올려 여성들의 공감을 샀고 여성부는 지난해 그를 양성평등교수요원으로 선발했다.

"양성 평등 교육이요? 그렇게 어려운 것 아니에요. 가정에서 부부가 이불 빨래나 집안 청소 등 가사를 함께 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교육이지요."

제 8회 여성주간(7월1~7일)을 맞아 4일 '양성평등! 새로운 문화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서울 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제8회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양성 평등'을 주제로 강의하는 그는 그동안 살림을 하며 겪은 이야기를 묶어 조만간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인천=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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