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생각에는]"우리애 강남학원 보내게 한달만 맡아주면…"

입력 2003-06-17 16:51수정 2009-10-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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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왕래가 별로 없던 친척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안부를 묻던 끝에 나온 얘기, “우리 아이 방학 때 한 달쯤 신세 지면 안될까….”

서울 강동구인 우리 동네도 사교육의 메카인 강남구가 가까워서인지 지방에 사는 친척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기 위해 방학 중에 머물다 가는 일을 종종 본다. 우리 아파트 민수네 집도 지난겨울 지방에 사는 고1 친정조카가 한 달을 머물다 갔다. 고3 수험생이 서울에 있는 학원으로 원정 오는 일을 전에도 보았지만 요새는 초중학생들도 가세하고 있다. 우리 친척 아이도 이제 중2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옛말 그대로다.

태국에서 6년을 살다 지난해 귀국한 뒤 대전에 정착한 내 친구는 통화만 하면 중학생 남매 때문에 한숨을 푹푹 쉰다. 아이들이 외국생활을 오래해 학교수업을 따라 가자니 사교육이 절실한데 ‘사교육 인프라’가 서울 같지 않다는 것이다.

중3인 그 집 큰딸은 토익 점수가 900점이 넘는데 수준에 맞는 영어학원이 없고 우리말 이해력이 떨어지는 중1 아들은 맡길만한 가정교사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지방에서 이렇듯 ‘서울바라기’가 되고 있지만 서울이라고 다 같은 서울인가. 서울하고도 동대문구에 ‘붙박이’로 살아온 나의 또 다른 친구는 아이가 올해 초등 6학년이 되자 아는 엄마들이 좀더 나은 중학교 진학을 위해 강남으로, 하다못해 강남 가까이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남은 사람들은 좌절감까지 느낀다는 것이다. 강남과 가까운 우리 동네에서도 공부 좀 한다 싶으면 으레 ‘핵심 강남’으로 이사를 하는 판국이다.

서울의 지역별 ‘서울대 진학률’(진짜 서울대가 아닌 서울 안 대학)은 이미 ‘상식’이 된지 오래다. 강남은 한 반에서 15명, 목동과 여의도가 10명, 나머지 지역은 5명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간다더라는 말에 나도 동감한다. 게다가 강북에서는 전교 1등을 해도 서울대 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니 ‘고양이 머리’ 대신 ‘호랑이 꼬리’를 택하는 ‘맹자 엄마’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공교육이 부실화된 지금 강남 교육파워의 핵심인 사교육은 은밀하면서도 막강하다. 체육과목까지 종목별로 세분화된 과외를 받을 수 있다는 강남에서 ‘서울대 입학’을 보장하는 1억원짜리 과외도 있다니까. 소문이 아닌 진짜 1억원짜리 과외 얘기를 전해준 동대문 붙박이 친구는 “빈부격차가 교육격차가 되고, 교육격차가 빈부격차로 세습될 바에야 차라리 기부금 입학제도를 도입해 그 1억원을 장학금으로 써야한다”고 열변을 토하다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했다. “차라리 학교 수업료를 왕창 올려야 하지 않겠니?”

어차피 사교육에 들일 돈, 공교육에 투자하면 공교육이 살아날 게 아니냐는 것인데, 1억 원에 열 받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드나 보다.

박경아 (서울 강동구 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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