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사람/루게릭병과 사투 김영갑씨 제주사진展

  • 입력 2003년 6월 3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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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의 한 눈에 보려면 폐교인 제주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 삼달초등학교를 찾아야 할 것 같다. 프리랜서인 김영갑(金永甲·46)씨가 20여 년간 카메라 앵글에 담아온 제주의 모습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귀병인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을 앓아 언제 찾아올지 모를 생(生)과의 이별을 앞두고 있는 그의 개인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씨는 국내 사진 분야에서 크게 알려지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www.dumoak.co.kr)를 통해 최근 전국 각지에 매니아가 생겨나는 등 주목을 받고있는 작가다.

그의 사진은 테크닉을 부리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채광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의 바람과 오름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충남 부여출신인 김씨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지난 1982년 흑백카메라를 둘러메고 제주에 들어왔다. 지금은 ‘제주사람보다 더 제주를 사랑한 사람’으로 불린다. 그는 산간에 허름한 움막을 짓고 원하는 사진 한 컷을 찾기 위해 한라산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그의 사진속에서 제주의 생명력인 바람과 오름(기생화산의 제주 방언)이 느껴지는 것은 그가 ‘기법’이 아닌 ‘열정’으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필름값이 아까워 굶기를 밥 먹듯이 하고,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며칠을 한 장소에서 기다리며 몸을 함부로 했던 그는 3∼4년 전 몸에 이상을 느꼈다. 손이 심하게 떨리며 카메라를 들 힘도 없어졌다. 지난 2001년 11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루게릭병 판정을 받았다.

이 병은 치료약이 없다. 6개월 동안 한방치료를 받았지만 별무소용. 30kg이 빠져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김씨는 “절망 뒤에 새로운 희망을 빛을 보았다”며“생이 다할 때 까지 전시회를 실컷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필름은 배 상자로 20개가 넘는다. 앞으로 수 년 동안 전시회를 계속 해도 남을 분량이다. 이번 전시회는 그가 루게릭병을 앓은 이후 세 번째로 기획한 것이다. 8월31일까지 문을 연다.

제주=임재영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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