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참사 수미 3남매-천안초교화재 유족의 '아름다운 재기'

  • 입력 2003년 5월 2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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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잃은 슬픔을 딛고 일어선 ‘수미 3남매’가 풀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영천=김미옥기자 salt@donga.com@donga.com
부모를 잃은 슬픔을 딛고 일어선 ‘수미 3남매’가 풀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영천=김미옥기자 salt@donga.com@donga.com
《가정의 달인 5월.2월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부모를 잃은 ‘수미양 3남매’와 3월 충남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로 아들을 잃은 김창호씨(40)의 경우는 가족 사랑의 의미를 더욱 강하게 되새기게 한다. 이들은 지금 아픔을 딛고 ‘아름다운 재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구참사 수미3남매 “꿋꿋하게 살래요”▼

“할머니, 다녀왔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경북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 황정자씨(63) 집. 자그마한 소녀 2명이 대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와 할머니 황씨 품에 안겼다. 황씨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지난해 1월 심장마비로 아버지가 사망한 뒤 올 2월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어머니마저 잃고 할머니와 생활하고 있는 엄수미(8), 난영양(6), 동규군(5) 등 3남매. 이들은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사고 후 두 달 동안 할머니는 농사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돌보는 데 전념했다. 엄마 생각으로 괴로워하지 않도록 항상 집을 비우지 않고 3남매를 돌봤다.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부쩍 철이 든 첫째 수미는 더 이상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다. 숙제도 스스로 하고 자다가 동생들이 차버린 이불을 덮어 주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는 동생들의 밥그릇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고집 센 둘째 난영이도 할머니의 말을 잘 따르는 편. 전에는 자신이 방을 어질러 놓곤 했지만 요즘은 동생 동규가 늘어놓은 장난감을 정돈할 정도로 달라졌다.

할머니 황씨의 눈에는 손자손녀들의 달라진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없이 안쓰럽게 보인다. 할머니에게 힘을 준 것은 3남매의 사연이 알려진 후 전국 각지에서 보내 온 편지들. “3남매를 훌륭히 키워 달라”는 당부와 “수미 힘내라”는 격려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수미를 위해 책을 보내 준 중학생도 있었다.

현재 생활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한국야쿠르트사가 보내주는 월 100만원. 황씨는 “이 중 50만원은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 50만원은 수미 3남매를 위해 적금을 넣고 있다”고 말했다.

책을 좋아하는 수미의 장래 희망은 국어선생님. 난영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랑스레 보여주며 “미술선생님이 되겠다”며 수줍게 웃었다.

▼천안초교화재 유족들 “봉사단체 만들것”▼

지난달 28일 오후 김창호씨(사진)는 가족들과 충남 천안시 광덕면 천안공원묘지를 찾았다.

3월 26일 충남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로 숨진 아들 바울군(13·초등 6)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그가 평소 좋아하던 초콜릿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을 기억했다. 김씨는 “더운 날씨에 케이크가 녹아내리는 것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요즘 아들에게 못다 한 사랑을 사회에 되돌려 주기 위한 봉사활동을 준비 중이다. 다른 유족들과 함께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사회봉사 단체를 만들기로 뜻을 모은 것.

그는 아들을 잃은 뒤 ‘조금 더 잘해줬더라면’, ‘조금 더 일찍 유학을 보냈더라면’ 하는 죄책감과 안타까움으로 밤낮 괴로워해야 했다.

하지만 김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울이가 다른 후배들을 구하려다 의롭게 하늘나라로 간 만큼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는 게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았다.

우유보급소를 운영하는 김씨는 최근 한동안 중단했던 오전 2시 우유배달을 다시 시작했다. 김씨는 “어린이날이 다가올수록 바울이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지만 슬퍼하고 있기보다는 불우한 사람들을 찾아 아픔을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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