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학-취업 준비생 “토플만으론 불안”

  • 입력 2003년 2월 3일 18시 44분


코멘트
《미국의 한 경영대학원(MBA)에 입학 지원서를 낼 예정인 은행원 이모씨(29)는 최근 ‘에세이(essay) 대행업체’를 통해 ‘명품 에세이’ 5편을 300만원에 주문제작했다. 에세이는 일종의 학업 계획서로 지원에 꼭 필요한 서류.》

이씨는 “상당수 미국 대학들이 아시아계 학생들의 경영대학원 수능시험(GMAT)이나 토플 성적에 ‘거품’이 있다고 보고 에세이를 중시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에세이 성적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유학과 취업 시즌을 맞아 ‘명품 에세이’ 과외가 붐을 이루고 있다. 영미권 유학에 필요한 토플, 대입수능시험(SAT)이나 법과대학원 수능시험(LSAT), 일반대학원 수능시험(GRE) 등에 포함되는 ‘단순 시험용’뿐 아니라 자기소개서 학업계획서 추천서 이력서 등 취업에 필요한 각종 에세이를 잘 만들기 위한 과외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명품 에세이’ 업체는 유학원 어학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역과 삼성동 일대에 지난해부터 10여개가 생겨났다.

E업체의 경우 MBA 지원을 하는 수험생들에게 먼저 ‘컨설팅’을 해준다. 상담원 중에는 미국 현지 기업체나 법률사무소 출신 외국인들이 잠시 한국으로 건너 온 사람도 있다. 수험생들이 자신의 인생경험을 이야기하면 상담원들은 이를 토대로 그들의 역량과 리더십, 미래의 목표 등을 ‘에세이’로 구성한 뒤 이를 한글로 써오도록 한다. 이후 번역요원이 영문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주는 두 차례의 작업을 거친다. 이 같은 과정의 ‘외주제작 비용’은 에세이 1편(5장)에 70만원선이다.

‘교수추천서’는 다른 상담원이 번역, 가필을 해주기 때문에 추가비용이 든다. 미국의 일부 학교는 지원자와 교수의 문체가 같을 경우 문제를 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업체들은 스탠퍼드 컬럼비아 하버드 등 미국 유명대학의 미국인 대학원생들과 계약을 하기도 한다. 이 업체들은 인터넷으로 ‘원격교정’을 받아 주는 조건으로 900단어짜리 장당 10만원 수준의 교정료를 수험생들에게 추가로 요구한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특히 1, 2월에는 ‘순번’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명품 에세이 과외가 인기를 끌고 있다. 9월 학기가 있는 외국 대학과 대학원의 입시철이기 때문. 일단 외국에 나간 경우라도 영국 대학처럼 한 달에 2, 3편의 논문을 수시로 써내야 하는 학생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또다시 ‘원격과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스퍼드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명품 에세이’ 업체에서 근무하는 제리 박씨(32)는 “외국 대학원 입학이나 외국계 기업 입사에서는 자기소개서 에세이 면접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므로 이 경우 대부분 ‘영문인터뷰 과외’까지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영어교육계에서는 쓰기 교육 부재라는 현실이 이 같은 ‘신종 과외’를 양산했다고 지적한다. 이화여대 ‘영어교정센터’의 피터 킵 교수는 “기-서-결에 이르는 구성이나 어법에 맞는 문장 등 기술적인 면에서는 영미권 학생들에 비해 뒤지지 않으나 역시 복잡하고 초점이 없는 내용이 문제”라며 “단순한 ‘영작’이 아닌 ‘목적에 맞는 글쓰기’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토플 등 지필고사의 유사 답안 제출 논란에 이어 에세이까지 획일화된 작품이 미국 대학 등지에 보내질 경우 한국 학생이 제출하는 입학자료의 신빙성을 아예 잃게 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