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에 비친 2002년

  • 입력 2002년 12월 28일 01시 14분


《본보 사회면 한쪽의 고정란 ‘휴지통’은 시대와 사회의 저류를 옹골차게 담아내는 ‘용광로’다. 200자 원고지 한 장 반이 채 안되는 짧은 기사지만 82년간 시대풍속과 서민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내 왔다. 월드컵과 대통령선거, 수해(水害)와 여중생 치사사건 등이 지면을 온통 장식했던 2002년 한해. 휴지통은 이들 굵직한 사건의 틈바구니에서 독자들의 ‘부족한 2%’를 채울 수 있는 삶의 깨소금을 찾아냈다.》

2002년 벽두. 월드컵의 열기는 휴지통까지 뜨겁게 달궜다.

월드컵 입장권 구매확인서를 위조해 4700여만원어치를 팔아치운 40대 남성이 구속됐고(2월27일자) 경북 칠곡의 한 양봉업자는 2002월드컵을 기념해 벌 22만마리를 몸에 붙이고 번지점프를 감행했다(5월18일자).

프랑스 극우파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 논쟁’을 불러일으키자 경기 안양에서 2대째 보신탕집을 하는 장수민씨(47)는 “보신탕 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며 프랑스 축구대표팀에 무료 시식 초청장을 보냈다(5월22일자).

한 중국집 배달원은 “자장면 그만 시켜라. 우리도 축구 좀 보자”는 호소문을 인터넷에 올렸고(6월8일자), 수감 중이던 김홍걸(金弘傑) 최규선(崔圭善)씨도 구치소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봤다(6월11일자).

9월 태풍 ‘루사’로 전국에 큰 수해가 나자 휴지통은 ‘온정의 성금함’으로 변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고향인 네덜란드 페르세펠츠시 시장이 위로 편지를 보내왔고(9월4일자) 국내 체류 중인 중국 동포 1만여명은 추석맞이 대잔치 자리에서 즉석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9월23일자).

1959년 태풍 ‘사라’로 경북 울진을 떠났던 사람들이 수재민을 위로하러 쌀을 들고 고향을 찾았고(9월18일자) 경북 김천시는 수해 때 과로로 순직한 공무원의 아들을 특별 채용하기도 했다(9월27일자).

경남 양산 영산대학생 3명은 “선거권 만 20세 이상 규정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고(12월17일자) 선거 당일 현재 최고령 유권자로 알려졌던 123세의 김금동 할머니가 이미 수년전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12월20일자).

휴지통은 또 여중생 치사사건의 추모 열기가 인터넷으로 확산되고 글 대신 ‘사이버 상장(喪章)’인 리본(▷◁)이나 삼베조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소개했다.

사법고시 합격자 1000명 시대. 법조인의 약화된 입지가 휴지통을 통해 전해졌다.

모 결혼정보회사의 여성회원 계약서에 ‘판·검사로 임용되지 못한 사법연수생과는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구를 알렸다(1월10일자).

휴지통에는 신용카드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고스란히 담겼다. 카드 빚을 갚기 위해 모자가 e메일로 거짓 구걸을 하다 적발됐다(2월8일자).

외국인 범죄도 휴지통에 쏟아져 들어왔다. 미화 100달러 위조지폐를 만드는 특수용액이 있다며 네팔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카메룬 남성이 잡혔고(5월31일자) 불법체류 신세가 된 미국인은 PC방에서 강도짓을 하다 붙잡혔다(8월13일자).

연예인은 올해도 휴지통에 가장 자주 등장한 인물. 가수 변진섭 백지영, 영화배우 이미연 장진영 등은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 휴지통에 올랐고, 대마초를 피워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가수 싸이(1월11일자)는 그 뒤 변리사시험에 응시해 다시 주위를 놀라게 했다(4월25일자).

아들을 못 낳는다고 고민하던 광주의 한 종갓집 맏며느리가 자살(2월16일자)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고 성탄절 저녁에 경기 고양시의 한 목사가 1만원짜리 지폐 3000장을 거리에 뿌린(12월26일자) ‘희한한’ 일도 있었다.

휴지통은 어렸을 때 해외로 입양된 뒤 성년이 돼 한국에 와 친부모를 찾는 6명의 사연을 소개해 가족을 찾는 데 조그마한 도움을 주기도 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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