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자대금 1조8000억 거짓납입

  • 입력 2002년 11월 27일 18시 25분


회사에 자본금을 넣었다가 빼내는 수법(가장납입)으로 선의의 투자자에게 피해를 준 회사 8700개가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 회사가 가장납입한 자본금 총액은 1조80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번에 적발된 회사 가운데는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디에이블 등 증권거래소 상장사와 코스닥 등록 기업 15개가 포함돼 있어 증시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지검 형사9부(이인규·李仁圭 부장검사)는 27일 가장납입 혐의를 받고 있는 8700개사 가운데 디에이블과 D, S, H, M, I사 등 상장 및 등록사 15개를 포함해 자본금이 30억원이 넘는 회사 20개를 우선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 회사 대표들이 회사를 설립하거나 유상증자를 하면서 ‘기업인수합병(M&A) 전용 사모(私募)펀드’나 사채업자 등의 돈을 끌어들여 회사 계좌에 넣고 이를 근거로 주식을 발행한 뒤 계좌에서 돈을 빼내 펀드나 사채업자에게 되갚는 수법을 썼다고 전했다.

사모펀드는 100명 이하의 투자자들이 자금을 모아 특정 종목이나 상품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이다.

이렇게 가장납입이 일어난 회사는 장부상에는 자본금이 잡혀 있으나 실제로는 돈이 빠져나가 껍데기만 남게 되며 증자가 이뤄진 것으로 믿고 주식을 산 선의의 투자자들은 나중에 손해를 보게 된다.

또 일부 회사 대표들은 일반 투자자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투자한 자금까지 빼돌려 펀드와 사채업자 등에게서 빌린 돈을 갚았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지난해 9∼10월 M&A 전용 사모펀드인 I사에서 29억원을 빌려 증자한 뒤 일반 투자자들이 투자한 자금 30억원을 빼돌려 I사에 원금 및 이자 명목으로 갚은 혐의로 디에이블 대표 이규호씨(39·전 이사)와 전 대표 김인선씨(40)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씨 등은 30억원 횡령 사실을 숨기기 위해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는 데 30억원을 쓴 것처럼 허위로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이를 공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씨는 올 8월 디에이블의 자금 44억1000만원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컴퓨터 관련 업체 쿠스코아이티에 담보 없이 대여하도록 하고 이 자금으로 코스닥 등록 기업 드림원을 인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주식 대금 6500여억원을 가장 납입하고 주가조작 작전 세력들에 900여억원을 빌려준 혐의로 지난달 구속기소한 서울 명동 최대 사채업자 반재봉씨(58)의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본금을 가장 납입한 8700개 회사를 추가로 확인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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