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자금 비리실태-신종수법]회계 흑자조작 수천억대출

  • 입력 2002년 11월 20일 18시 32분


공적자금 2차 중간 수사 결과 적발된 기업과 개인의 범죄 혐의를 살펴보면 추악한 냄새를 짙게 풍기는 ‘비리의 백화점’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의 비리는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의 동반 부실로 이어져 전체 규모 156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 투입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아파트도 공적자금 떼먹는 수단〓검찰은 이번에 아파트 담보대출 사기 및 신용대출 사기 사범 등 신종 범죄를 적발했다. 아파트를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돈을 떼먹고 도망가면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부실을 가중시켜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최근 아파트 담보 대출 사기는 감정평가사의 감정과 보증기관의 보증 등 ‘합법적인’ 세탁과정을 거치는 것이 한 특징이라고 수사팀은 말한다.

이번에 구속된 사기범들은 분양되지 않던 아파트를 외상으로 사들여 분양계약서를 위조해 분양가를 높인 뒤 감정 평가를 거쳐 실제 분양가의 1.5배가량을 대출받아 가로채는 수법을 동원했다.

또 대출 브로커가 ‘바지 보증인’을 내세워 아파트를 사들인 뒤 각종 공과금 영수증을 신용보증기금에 제출해 대출 보증을 받아 은행에서 가계 대출 자금을 받은 사례도 나타났다.

이럴 경우 브로커나 사기범들이 대출금을 받고 도망가면 그 피해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보증보험으로 직접 돌아간다.

▽사기로 대출받아 비자금 조성〓부실 기업주들은 예외 없이 회계 장부를 조작해 흑자 기업으로 위장한 뒤 은행과 증권사, 보증보험에서 막대한 자금을 대출받았다.

기업주들은 부실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2년 전의 이자를 새 회계연도의 수입으로 계산하기도 했다. 또 거짓 현물거래 계산서를 만들어 다른 회사의 융통어음을 은행에서 진성어음이라고 속이고 어음을 할인받아 순이익을 높이는 수법도 이용됐다.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자금은 기업주 친인척 소유 부동산을 고가에 사들이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 주로 투입됐다.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각종 공사 원가를 적게 계산하고 노무비를 부풀리는 고전적인 수법도 동원됐다.

극동건설그룹의 김용산(金容山) 전 회장은 회사돈을 자기 호주머니 돈처럼 여겨 값비싼 도자기와 골동품을 수집하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과제〓검찰은 기업주가 가로챈 자금이 정 관 금융계 로비에도 사용됐는지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혐의가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1차 수사에 이어 2차 수사에서도 부실 기업과 금융기관의 정치권 등에 대한 로비 등 ‘거악(巨惡)’을 적발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검찰 관계자는 “부실 기업이 망하면서 회계 장부 등이 없어진 데다 수사의 칼날을 피해간 다른 기업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공적자금 비리수사는 1년 정도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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