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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4일 2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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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임기제 도입 이후 13년여 동안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한 검찰총장은 박종철(朴鍾喆), 김두희(金斗喜), 김기수(金起秀), 김태정(金泰政), 신승남(愼承男)씨 등 5명. 여기에 이명재(李明載) 총장까지 사표가 수리될 경우 6명으로 늘어난다. 무려 절반이 현 정권 기간에 임명된 총장들이다.
김영삼(金泳三) 정권 말기에 검찰총장에 임명된 김태정 전 총장은 현 정권 출범 이후에도 계속 총장으로 재직하다 99년 5월 임기 2개월여를 남기고 법무장관으로 영전했다.
그러나 김 전 총장은 장관 취임 한 달여 만에 부인 연정희(延貞姬)씨가 연루된 ‘옷 로비 사건’과 진형구(秦炯九) 당시 대검 공안부장의 ‘파업유도 발언’에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이어 총장에 임명된 박순용(朴舜用) 전 총장은 지난해 5월까지 2년 임기를 무사히 마쳤지만 재임기간 중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 ‘16대 총선사범 편파수사 논란’ ‘진승현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등으로 편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신승남 전 총장은 취임 초기부터 현 정권과 밀접한 관계라는 한나라당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제기되는 등 수난을 겪다가 결국 올 1월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에서 동생 승환씨가 구속되면서 8개월 만에 ‘낙마’하고 말았다.
만신창이가 된 검찰의 회생이라는 사명을 띠고 올 1월 검찰총수 자리에 올랐던 이명재 총장은 현직 대통령의 두 아들 구속, ‘병풍(兵風) 사건’ 수사 등 민감한 사안들을 10개월의 재임기간 중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총장은 특히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을 극복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이루기 위해 정치인 등 외부 인사와의 접촉을 끊고 구내 식당에서만 식사하는 등 ‘은둔 생활’에 전념했으나 뜻하지 않은 ‘검찰 내 피의자 폭행 사망 사건’에 휘말려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나게 됐다.
평검사 때부터 특수수사와 인연을 맺은 그는 서울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중수부장을 지내면서도 한번도 ‘강압수사’ 문제로 물의를 빚은 일이 없다. 그에게 조사를 받은 피의자들에게 ‘돌부처’ 같은 검사로 통했다고 한다. 그는 사표를 낸 4일 저녁 대검간부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검찰 개혁에 신경을 많이 써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 현 정부의 검찰총장 재임기간 | |||||||||||||||||||||||||||||||||||||||||||||||||
| 검찰총장 | 재임기간 | ||||||||||||||||||||||||||||||||||||||||||||||||
| 김태정 | 1997년 8월∼1999년 5월 | 1년9개월 | |||||||||||||||||||||||||||||||||||||||||||||||
| 박순용 | 1999년 5월∼2001년 5월 | 2년 | |||||||||||||||||||||||||||||||||||||||||||||||
| 신승남 | 2001년 5월∼2002년 1월 | 8개월 | |||||||||||||||||||||||||||||||||||||||||||||||
| 이명재 | 2002년 1월∼2002년 11월 | 10개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