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적 평론 訴대상 안돼"

  • 입력 2002년 10월 3일 18시 52분


비판을 견제하기 위해 ‘명예훼손 고소’를 무기로 들고나와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면 고소인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8부(재판장 김용호·金容鎬 부장판사)는 3일 군사평론가 지만원(池萬元)씨가 “율곡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뒤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국방부 전 고위간부 이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의 정책이나 사업 등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 고위 공직자가 언론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를 남발하던 추세가 주춤할 전망이다.

또 명예훼손 소송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피고소인들이 고소인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내는 경우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가 기고한 평론은 율곡사업 등 군수사업 비리가 사회적 문제점으로 부각됐던 당시 상황과 표현방식 등에 비춰 피고를 지목해 인신 비방이나 비리를 폭로하려는 것으로 보기 어렵고 오히려 공익적 관점에서 쓰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는 특정인을 고소할 때 주의 의무를 경솔히 한 것으로 과실이 인정된다”며 “다만 원고로서도 뚜렷한 자료 없이 다소 직설적인 어조와 부적절한 표현으로 평론을 작성한 점 등을 고려, 위자료 액수를 5000만원으로 정한다”고 덧붙였다.

지씨는 98년 모 시사월간지에 ‘15조원 국방비, 30%의 거품을걷어내라’는 제목의 평론을 기고하면서 중형 잠수함 도입과 관련한 군 간부들의 비리 의혹 등을 지적했다가 이씨에 의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됐으나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자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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