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곳을 아시나요]문학경기장 앞 '인천도호부 청사'

  • 입력 2002년 8월 30일 18시 52분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호는 무엇일까. 바로 남구 문학동 문학초등학교 내에 있는 ‘인천도호부(都護府) 청사’다.

‘제1호’라는 것은 인천에서 으뜸가는 가치를 지닌 문화재라는 뜻보다는 다른 문화유산에 앞서 지정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일제가 이 청사를 학교 건물로 이용하면서 대부분이 훼손돼 지금은 객사와 동헌 일부만 남아있다.

이 때문에 인천시는 문학초등학교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인천도호부 청사를 복원했다. 복원된 인천도호부 청사는 인천시가 81억원을 들여 1998년 10월 착공, 2001년 10월 완공한 것으로 월드컵경기가 열렸던 문학경기장 맞은 편에 있다.

2100여평의 부지에 객사 동헌 공수 관아문(官衙門) 등 7개 건물이 복원됐고 옛 모습에 가깝도록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화도진도(花島鎭圖)’를 참고했다.

건물 내부마다 인형 등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데다 인근에 인천향교가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지난해 10월14일 문을 연 이후 최근까지 모두 13만8000여명이 다녀갔다.

청사 옆 60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에서는 올 1월과 6월 정월대보름과 월드컵 문화행사가 각각 열렸다. 또 다음달 14∼15일에는 무형문화재 공연 등 추석맞이 민속문화축제가 선보인다.

내년부터는 매주 토·일요일에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펼쳐질 예정이다.

‘도호부’는 조선 태종이 1416년에 전국을 8도로 나눈 뒤 도 아래에 두었던 행정기구로 중앙과 지방을 잇는 역할을 했다.

경기지역의 경우 당시 8곳에 도호부가 설치됐는데 인천에는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가 있었다.

부평도호부 청사는 현재 계양구 계산동 부평초등학교 내에 있는데 시 유형문화재 제2호다.

인천은 세조의 어머니인 소헌(昭憲)왕후의 외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세조 6년인 1460년 도호부로 승격됐다.

인천도호부 청사의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선시대 학자인 강희맹(姜希孟)이 쓴 ‘인천부승호기(仁川府陞號記)’에는 1424년에 이미 관청 건물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기록에는 당시 20칸 규모의 객사(客舍·중앙의 관료가 왔을 때 묵거나 주요 행사가 열리던 곳)를 비롯해 동헌(東軒·부사가 행정업무를 보던 곳) 공수(公須·사신의 수행인력 숙소) 등 15개 정도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다고 돼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는 등 후대에 모범이 되는 도호부사들이 많았다”며 “이들에 대한 기록은 물론 인천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확충해 시민들을 위한 역사교육장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승철기자 parkk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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