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이곳을 아시나요…인천 화평동 냉면골목

  • 입력 2002년 8월 2일 21시 22분


여름의 대표음식 ‘냉면’. 냉면하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떠올리지만 과거 이들 못지 않게 유명세를 탔던 것이 ‘인천냉면’이었다.

동인천역에서 화평철교를 지나 왼쪽 길로 접어들면 냉면 간판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이 나온다. 지난날 명성높았던 인천 냉면의 부활을 주도하고 있는 ‘화평동 냉면 골목’(동구 화평동 288일대)이다.

주말이면 폭 10m, 길이 170m의 골목은 서울 경기 충청도 등 각지에서 몰려든 1만5000여명의 냉면 애호가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화평동 냉면골목을 찾는 사람들은 세가지 사실에 놀란다. 처음엔 ‘냉면집이 많아서’, 다음에는 ‘그릇 크기에’, 끝으로 ‘턱없이 싼 가격’에 놀란다.

1.8ℓ의 육수를 그릇에 붓고도 넘치지 않을 정도로 그릇이 크고 양이 많다. 일명 ‘세숫대야’ 냉면으로 불리는 냉면집들의 그릇은 보통 냉면 그릇 크기의 3배. 면과 육수를 담은 그릇을 전자저울에 달아보았더니 2㎏이나 됐다.

또 그릇당 물냉면 3000원, 비빔냉면 3500원 등 모든 집들이 같은 가격으로 다른 지역보다 1500∼3000원이나 저렴하다. 게다가 교복을 입은 중·고교생들에게는 그릇당 1000원씩 할인 해준다.

양이 많고 값이 싸다고 해 맛이 뒤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시원하면서도 톡 쏘는 듯한 얼큰한 육수와 면발은 화평동 냉면이 갖고 있는 강점이다.

화평동 냉면골목이 형성된 시점은 20여년전.

80년대초 인근 화수시장에서 3∼4평 남짓한 소규모 냉면집을 운영했던 상인들이 비좁은 시장에서 벗어나 이곳에 하나 둘 개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냉면 골목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97년 6월에는 동구청으로부터 ‘특색 음식거리’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냉면을 팔아온 김중훈씨(59·삼미 소문난냉면 주인)는 “80년대 초만해도 인근 대성목재 삼미사(목재소) 동일방직 INI스틸(옛 인천제철) 인천항 부두 근로자들이 많이 몰려 들었다”며 “낡고 허름한 냉면집에서 작업복 입은 근로자들이 덕담을 나누며 냉면을 즐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냉면골목도 개발 바람에 영향을 받으며 규모가 다소 축소됐다. 인천역∼주안역간의 경인전철 복복선 확장공사가 진행되면서 올해초 철도변에 붙어 있던 집들이 헐리게 된 것. 한때 23개에 달하던 업소가 현재는 13개로 줄었다.

화평동 냉면의 원조격인 인천냉면의 역사는 인천개항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자 ‘인천 드림’을 꿈꾸며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이 모이다 보면 먹을 거리도 풍성해지는 법. 특히 평안도 황해도 출신이 많았던 탓인지 이들 지방의 대표 음식중 하나인 냉면이 자연스럽게 소개됐다.

첫 냉면집이 언제 생겼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향토사가들은 개항후 10년이 지난 1893년경으로 보고 있다. 중구 용동 마루턱에 있었던 평양관(平壤館)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인천 지역 언론인이었던 고 고일(高逸)씨가 1955년 펴낸 ‘인천석금’에는 ‘사정옥과 평양관에는 당시 모습을 알 수 있는 생생한 장면들이 묘사돼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직접 찾는 손님보다는 주문이 많았다. 서울 등 먼거리까지 자전거에 냉면목판을 싣고 배달한 시절도 있었다. 배달원들이 마치 자전거경주대회를 여는 듯 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고 기록돼 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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