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경근/사립高부터 평준화 풀자

  • 입력 2002년 3월 6일 18시 21분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많은 학부모들이 장사진을 이룬 채 며칠씩 노숙을 불사했다. 일부 학부모들의 경우에는 어렵사리 확보한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가족들을 총동원해 교대로 밤을 세웠다고 한다. 매년 신학기 초 서울 강남 지역의 학교를 겨냥해 전학 신청이 쇄도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금년에는 특히 어려웠던 지난해 대학수능시험과 수도권 신도시 지역에 새롭게 적용된 평준화제도가 예년보다 훨씬 많은 수의 학부모들을 움직이게 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당국에서는 예전보다 더욱 강화된 단속을 통해 위장전입자로 적발된 학생은 전원 원래 배정받은 학교로 돌려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미봉책은 단지 학부모와 교육당국 사이의 비교육적이고 비생산적인 숨바꼭질을 더욱 교묘하고 가증스러운 양상으로 몰고 갈 뿐이다.

▼´편법 강남행´단속은 미봉책▼

현재 목도되고 있는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당국이 학부모들의 학교선택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과소평가해 이를 적극 수용하지 않고 있는 데 있다. 이와 관련해 금년 평준화 지역으로 전환된 수도권 신도시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70% 이상이 평준화제도에 대해 찬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이들 지역에서 나타난 노골적인 특정 학교 기피 현상이나 서울로의 전학 사태는 평준화제도에 찬성한 학부모들의 속내가 결코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국민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평등의 가치를 중시한다. 그런 반면에 남들과의 경쟁에서 한 걸음이라도 앞서 나가려는 치열한 경쟁의식도 지니고 있다. ‘평등주의’라는 수사적인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업적주의’라는 실질적인 관행을 수용하는 사회적 풍토는 바로 이 치열한 경쟁의식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평준화지역에서 과외열기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현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학부모들이 평준화제도를 지지하는 것을 단순히 그들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겠다는 꿈을 접은 것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자녀의 입시 때문에 초래된 중압감에서 한시적으로나마 해방되면서 최소한 다른 사람들의 자녀와 동일한 여건에서 자기 자녀가 경쟁을 시작하도록 하고 싶다는 희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이 경우 타의에 의해 자신의 자녀가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판단을 갖게 되면 학부모들이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지 않을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현실적으로 평준화지역의 모든 학교가 동일한 교육여건을 갖추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평준화지역에도 비평준화지역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학교간 학력 격차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으며, 학부모들 사이에 선호학교와 기피학교가 엄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당국이 지금처럼 평준화에 대해 과도한 집착을 갖는 것은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교육당국이 평준화 해제에 소극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될 우려가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이미 평준화지역에서도 사교육 시장을 중심으로 일상화하고 있다. 또 경제적 능력을 지닌 학부모가 자녀의 교육에 그 능력에 상응하는 지원을 하는 것을 반드시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우리 국민의 소득수준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한 추세로 향상돼 왔다. 그런데 그렇게 증가해 온 가계소득의 상당 부분이 교육이라는 매우 생산적인 용도에 흡수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들어 갔다면 그 결과는 어떠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강북지역 우선 도입 바람직▼

일시에 기존 평준화의 틀을 깨는 것은 우리 국민의 교육열을 고려할 때 대단히 위험한 실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량과 여건을 갖춘 사립학교마저 지금처럼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립학교들을 중심으로 좀더 가시적으로 학부모들에게 학교 선택의 폭을 넓혀주려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동일한 역량과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면 가급적이면 서울 강북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학교에 우선적으로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현재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학부모들의 ‘강남 신드롬’을 완화하는 데도 일조를 하게 될 것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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