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사형원심’이례적 파기

  • 입력 2002년 2월 24일 18시 09분


강도살인과 특수강도강간, 사기 등 12가지 범죄를 저지르고 1, 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피고인에 대해 대법원이 “사형선고는 너무 가혹하다”는 이유로 이례적으로 원심을 깼다.

대법원 3부(주심 변재승·邊在承 대법관)는 22일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육군모부대 소속 손모 중위(26)에 대한 상고심에서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판결은 국회의원 과반수의 서명을 받은 사형폐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고 종교계 등에서 사형폐지운동이 활발한 상황에서 사형제 존폐를 둘러싼 논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나이와 성장과정 가정환경 경력 등을 고려해보면 피고인은 아직 교화개선의 여지가 있다”며 “사형이 갖는 형벌로서의 특수성 등을 감안하면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은 과중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해 남들과 다름없는 가정생활을 해왔으나 인터넷 음란물 등을 탐닉하면서 성적 망상에 빠진 끝에 강간 등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 피고인은 99년 말부터 18개월 동안 9명의 부녀자를 상대로 연쇄 강간을 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중 탈옥해 박모양(18)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1, 2심 재판부는 “범죄에 대한 응보와 사회방위 차원에서 극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폐지운동협의회 이상혁(李相赫·변호사) 회장은 “대법원이 앞장서서 인명 존중을 천명한 의미 있는 판결이며 사형수들을 상대로 교화운동을 해온 경험에 비춰보면 사형수 가운데 상당수는 사회에 복귀해 새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하급심에서도 사형 판결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98년 9차례의 강도 강간과 1차례의 살인 범행을 한 뒤 1, 2심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피고인에 대해 “교화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원심의 사형판결을 깬 일이 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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