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생존가능성 환자 퇴원시킨 의사,항소심도 '살인방조죄' 적용

  • 입력 2002년 2월 14일 18시 11분


생존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퇴원시켜 사망케 한 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논란이 됐던 ‘보라매병원 사건’의 항소심에서도 유죄 판결이 내려져 의학계가 반발하는 등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5부(이종찬·李鍾贊 부장판사)는 7일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뇌수술 직후 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보라매병원 의사 김모씨(34)와 양모씨(39)에 대해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1심 재판부는 98년 이들에 대해 처음으로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 등이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한 부인의 퇴원 요구에 응해 생존 가능성이 있는 환자의 사망 위험성을 인식하고도 그를 퇴원시킨 것은 단순한 윤리적 책임을 넘어선 범죄행위”라며 “그러나 부인의 퇴원 요구를 수차례 만류하며 필요한 의료조치를 한 점 등으로 미뤄 ‘살인’이 아니라 ‘살인방조’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위한 건강보험이나 응급의료기금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의사의 의학적 결단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도 미비한 현실에서 의사에게만 무한정 책임을 강조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생명을 임의로 처분할 수 없다는 원칙 자체는 포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불러온 안락사 논쟁에 대해 “치료의 중지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말기 상태의 환자에 대해서만 의사의 양심적 결단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뿐이고 그 허용범위와 방법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진지한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또 남편 김씨를 퇴원시킨 이모씨(52)에 대해서는 1심대로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으며 양씨의 지시를 받고 인공호흡기를 떼 김씨를 숨지게 한 인턴 강모씨(31)에 대해서도 1심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의학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회생 가능성’에 대한 의사 개인의 판단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부담해야 할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다는 것.

대한의사협회는 “의사의 윤리만 규정돼 있을 뿐 경제적인 지원이나 현실적 대책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문제는 또 발생할 것”이라며 “사회도 제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보라매병원 측은 “사망한 환자는 의학적으로 생존 가능성이 없었으므로 대법원에 상고해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가리겠다”고 밝혔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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