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교통선진국]커브길 깜짝 신호등 사고 유발

  • 입력 2002년 1월 20일 18시 15분


17일 오전 10시반 서울 양천구 목동 양정고등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

대형 트럭 한 대가 학교 앞, 양평교에서 목동교 방향 편도 2차로 커브길을 달리다 갑자기 나타난 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자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이미 거대한 몸집을 못 이긴 차체는 운전석을 포함한 차량 앞머리의 반을 횡단보도에 걸쳐버렸다.

트럭 운전사 김모씨(33)는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와 이화여대목동병원 뒤편에서 신호를 한 번 받은 뒤 도로 제한속도인 시속 60㎞까지 속도를 높이며 이 커브길을 돌던 중이었다.

운전사 김씨는 “커브로 인해 시야까지 제한된 상태에서 시속 60㎞로 달리다 멈춘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보행자가 있었으면 꽤 다쳤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숨어버린 신호등〓이화여대목동병원 뒤편에서 양정고 정문 앞까지 횡단보도는 두 곳.

130여m의 간격을 두고 설치된 두 횡단보도의 신호체계는 같이 움직이고 첫 횡단보도를 파란불로 통과한 차량들은 ‘설마 또 횡단보도가 있겠느냐’는 생각에 속도를 올리며 커브를 돈다.

커브로 인해 시야가 70여m로 제한된 상황에서 빨간불로 바뀐 학교 앞 두 번째 횡단보도 신호등이 나타나면 운전자들은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게 마련.

여름이 되면 도로 양쪽에 심어진 가로수의 잎들로 인해 신호등의 모습은 더욱 찾기 어렵다.

2000년 한 해 동안 양정고 정문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는 모두 16건. 이 중 횡단보도 앞 급정차로 인한 추돌사고가 12건이다. 부상자 16명 중 9명이나 중상을 입어 사고 내용도 가볍지 않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학생들의 사고가 없었던 것이 다행.

양정고 생활지도부장 원종천(元鍾天) 교사는 “학생들에게 매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지만 왕복 4차로밖에 안 되는 좁은 도로라서 무단 횡단을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며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를 위한 교통안전시설이 보강돼야 한다”고 말했다.

▽개선방안〓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안전과 홍유표(洪有杓) 조사원은 “학교 앞 횡단보도 전방에 예비 신호등을 설치하거나 횡단보도 예비표지판을 설치해야 한다”며 “운전자들에게 정보와 주의를 줄 수 있는 교통안전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와 경찰청은 서울시내에서 교통사고가 잦은 지역 151곳 중 한 곳으로 양정고 앞을 선정하고 개선 방안을 검토중이다.

개선안에 따르면 올해 안에 횡단보도 주변 도로 양 차선 50m에 미끄럼방지 포장을 하고 횡단보도 예비 표지판과 점멸등도 마련된다.

언덕길이나 급커브길에 흔히 설치되는 예비 신호등은 관할 양천경찰서가 반대하고 있다. 예비 신호등을 둘 경우 운전자들이 이를 본 신호등으로 착각해 급정차할 수 있고 예비 신호등과 본 신호등 사이의 거리 때문에 두 신호등의 신호가 달라질 경우 사고 위험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

가장 좋은 방안은 횡단보도 대신 육교를 설치해 차량소통과 보행자 안전을 동시에 도모하는 것이지만 관할 양천구청은 미온적이다.

양천구청 토목과 관계자는 “등하교길 학생들이 주로 길을 건너는 왕복 4차로의 좁은 도로에 예산이 많이 드는 육교를 놓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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