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김홍신의원 조사 "헌혈받은 혈액 멋대로 팔린다"

  • 입력 2000년 11월 27일 18시 34분


헌혈된 피가 엉뚱하게 상업용으로 팔리고 있다. 위급환자의 치료를 위해 국민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피를 대한적십자사가 수혈목적이 아닌 연구용 등 다른 용도로 팔아 넘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그 중에는 벤처기업에 연구용으로 제공되는 경우도 많아 헌혈자의 유전자 정보가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유출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동아일보 취재팀과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의원이 96년 이후 대한적십자사의 혈액 관리 실태를 종합 점검한 결과다.

▼매혈(賣血)실태▼

적십자사는 96년 이후 무려 1만4391명분(1명분은 평균 320㏄)의 혈액을 수혈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외부에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96년 약 900건, 97∼99년 평균 2000건에 머물렀던 연구용 혈액 제공은 올해 상반기에만 7217건을 기록,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또 이 중 검체(적혈구 혈소판 등 피의 주요 요소를 빼고 남은 부분) 7003명분은 무상으로 제공됐지만 정상 혈액 7388명분은 1명분당 1만8480∼3만820원씩 받고 판매된 것으로 밝혀졌다.

현행 혈액관리법 시행령 제6조는 ‘정상혈액이 아닌 부적격 혈액만을 의학 연구 및 의약품 조제에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적십자사는 자체적으로 ‘연구용 혈액 수급관리 지침’이라는 것을 만들어 정상혈액을 판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 지침에서조차 ‘혈액을 가져가는 기관은 연구 목적 등을 상세히 밝힐 의무가 있으며 연구가 끝나면 혈액을 안전하게 폐기했다는 증명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기관들은 간단한 형식적 절차만 거친 채 혈액을 구입해간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기사▼

[연구용 혈액유출]"피 구하는데 공문 한장이면 OK"

▼유전자정보 유출우려▼

혈액을 가져간 기관들의 성격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들 기관 중 책임소재가 분명하고 정부의 감시를 받는 국공립기관으로 건네진 혈액은 1840명 분으로 전체의 12.7%에 불과했다.

반면 대학이 가져간 혈액은 2348명분(16.3%)이었고 벤처기업이나 제약회사 등 민간 기업에 건네진 혈액이 무려 1만203건으로 전체의 71%를 차지했다. 이들 중에는 DNA칩 개발이나 유전자 연구를 하는 이른바 ‘바이오 벤처 회사’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개인의 유전자 정보 유출 우려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적십자사 측은 “외국에서도 돈을 받고 혈액을 파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또 혈액 이외에 개인 정보는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개인의 유전자 정보 유출 우려는 절대 로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톨릭대 여의도 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金東煜)박사는 “선진국의 경우 혈액 제공자에게 연구 내용과 목적을 반드시 알려야 하며, 또 제공자의 동의 없이는 절대로 혈액을 연구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며 “개인의 모든 유전자 정보가 담긴 혈액을 이처럼 허술하게 민간기업에 제공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완배·최호원기자>roryre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