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새 여객터미널 '애물단지'…대형 여객선 못대

  • 입력 2000년 11월 2일 19시 24분


텅텅빈 여객실
텅텅빈 여객실
“21세기 서해안시대의 중추 시설로 만들겠다.”

이같은 거창한 목표 아래 407억원을 들여 98년에 착공, 지난달 2일 인천 중구 항동에 지상 4층의 화려한 외관을 드러낸 제1인천국제여객터미널. 그러나 이 터미널은 몇년 뒤도 내다보지 못한 졸속 행정으로 제 기능을 못하는 애물단지로 변하고 있다.

▽새 터미널 현황〓그동안 사용해 온 1층짜리 구(舊) 국제여객터미널은 88년 서울올림픽때 당시 소련 선수단을 배편으로 맞아들이기 위해 급조한 임시 건물이다. 터미널이라고 부르기조차 부끄러운 조악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깨끗하고 넓은 시설을 갖춘 새 터미널은 주로 중국을 오가는 여행객들의 편의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새로 개장한 터미널은 그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전체 여행객의 절반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새 터미널의 부지 설정이 잘못됐다는 점. 이 터미널의 선석(船席), 즉 배가 들어와 정박하는 장소의 길이가 2만t급이 넘는 대형 선박이 들어오기에는 너무 짧다. 2만6000t급 배가 정박하기 위해서는 250m의 선석이 필요하나 새 터미널에는 1만5000t급 배가 겨우 정박할 수 있는 180∼200m 길이의 선석이 있을 뿐이다. 250m짜리 대형 선석을 만들기에 부지가 애초부터 좁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한국∼중국을 오가는 7척의 여객선 중 1만5000t급 4척만이 신터미널을 이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1만6000t급 1대와 2만6000t급 2대는 아직도 구터미널을 쓰고 있다.

▽졸속 행정의 원인과 결과〓해양수산부 관계자는 “96년 공사를 계획할 때만 해도 1만5000t급 배가 가장 큰 배였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로 터미널을 지으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해 ‘졸속 행정’이었음을 시인했다. ‘대충 때려잡은’ 예측은 5년도 지나지 않아 그 잘못이 드러난 것이다. 올해초 한―중간 여객선으로 2만6000t급 대형 배가 2대나 도입되는 등 여객선의 대형화가 급속히 이뤄진 것.

사정이 이렇게 변하자 해양수산부는 할 수 없이 구 터미널을 ‘제2터미널’로 이름 붙이고 큰 배들이 이용토록 하고 있다. 불과 2㎞ 거리를 두고 신 터미널과 구 터미널이 따로 운영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바람에 관리원 세관원 등 직원들도 모두 두 곳으로 나뉘어 일을 해야 하는 등 인력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지상 4층짜리 연건평 5000여평의 대형 건물인 신 터미널은 전체 여행객의 40%밖에 받지 못하고 있어 신 터미널은 썰렁한 느낌마저 준다. 터미널 관리를 맡고 있는 한 직원은 “새 터미널이 크고 좋기는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너무 없어 공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하승수(河昇秀)변호사는 “고의적인 공금 유용뿐만 아니라 사업의 타당성과 적정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아 국가 예산을 낭비한 경우에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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