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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2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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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현실, 더 불안한 미래’ 앞에 사람들은 주머니를 닫고, 몸과 마음을 움츠리고 있다.
퇴출기업 발표 하루 전인 2일 현대그룹 계동 사옥 앞 참치횟집. 주 고객인 현대건설의 ‘생사’ 결정을 앞두고 식당 안은 하루종일 썰렁했다. 점심시간인데도 10개의 테이블과 4개의 방에 손님이라곤 겨우 10여명. 손님으로 북적대던 올 봄의 풍경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건 벌써 몇 달 전부터지만 이날은 유난히 손님 발길이 뜸했다. 이곳에서 10여년째 ‘현대맨을 바라보고’ 장사를 해왔다는 주인은 “장사도 장사지만 현대건설이 퇴출되는 건지 며칠째 신경이 쓰여 일이 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 직원들한테 받을 외상값도 꽤 되는데, 회사 사정 어려운 줄 뻔히 알면서 돈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주인은 수심어린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계동처럼 기업 퇴출 여파가 ‘직접’ 미치지 않는 곳이라고 해서 사정이 나을 건 별로 없다.
서울 강북의 모특급호텔 일식집은 이날 낮에 예약률이 평소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대형약국이 몰려 있는 종로 5가의 종5약국은 지난달 중순부터 이미 매출이 뚝 떨어졌다.작년부터 10월 초까지 20∼30통씩 나갔던 영양제가 요즘은 10통 정도밖에 안 팔린다. 이 약국의 약사는 “약이 불황을 탄다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영양제 팔리는 걸 보면 불황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새한치과의 손영화원장은 “치열교정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데 요즘 몇 백만원이 드는 치료비를 나눠서 내겠다는 환자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고가의 치료는 꺼린다는 설명.
어려울 때는 아이들 우유값도 부담스럽다. 서민과 중산층이 섞여 사는 서울 강남 수서 지역의 우유 보급소에는 요즘 “우유를 그만 넣어라”는 전화가 하루에 10여통씩 걸려온다.
한달 내내 우유를 먹어봐야 200㎖짜리가 1만2000원, 500㎖짜리가 2만4000원에 불과하지만 한푼이 아쉬운 서민들은 이마저 지출할 여유를 잃고 있다.
기업들의 접대술자리도 많이 줄어들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O 룸살롱’의 주인 김모씨(42)는 “2∼3개월 전부터 매상이 줄더니 최근에 기업 퇴출 얘기가 나오면서부터는 ‘예약’자체가 없어졌다”고 전했다.
김씨는 “오후 8시반 정도면 4개의 룸이 가득 차던 것이 요즘은 밤 11시가 돼도 방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고 술을 먹더라도 예전보다 적게 마시고 빨리 귀가한다”고 푸념했다.
경기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신사복 매장에서도 불황은 확연히 느껴진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갤럭시 신사복 매장의 천관우 소장은 “손님들이 부쩍 20만∼30만원대의 저가품을 찾고 60만∼70만원대의 고가 신사복에는 눈길도 안준다”고 말했다.
<이명재·박중현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