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 15세딸 장기기증 결정한 아버지…3명에 새생명

  • 입력 2000년 10월 15일 23시 33분


5시간이 넘는 대수술이었건만 딸아이를 살리는 수술이 아니었다. 아니 딸아이를 더 오래 살리는 수술이었다.

15일 오후 6시 서울 강동구 길동 강동성심병원 장기이식 수술실.

아직도 심장이 생생히 뛰고 있는 딸 김은희양(15·일산 저동고 1년)을 수술실로 들여보내는 아버지 김영구씨(46·회사원·경기 고양시 일산구)의 마음은 갈등으로 소용돌이쳤다. 딸아이도 기꺼이 허락했을 것이라는 믿음마저 흔들리고 불쌍한 딸에게 못된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참아왔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은희양은 5일 오전 9시50분경 교내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병원으로 달려간 김씨는 3일 후 나온 딸의 병명에 고개를 떨구었다.

‘모야모야병.’ 뇌의 약 80% 정도에 피를 공급하는 내경동맥 끝부분이 막혀서 뇌 속에 수많은 비정상 미세혈관이 만들어지는 희귀병. 결국 은희양은 13일 오전 8시 뇌사판정을 받았다.

이때부터 김씨와 가족들간에 격론이 시작됐다. 장기이식 이야기를 꺼낸 김씨에게 아내는 “불쌍하게 죽어 가는 딸에게 어떻게 칼을 대느냐. 곱게 보내주자”며 거세게 항의했다. 은희양의 할아버지도 “나보다 먼저 간 손녀에게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고 꾸짖었다. 친척들도 “어떻게 뇌사판정이 나자마자 망설임도 없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느냐”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김씨의 뜻은 확고했다. 김씨는 “타고난 딸의 운명이 여기까지라면 그건 받아들이자. 장차 세상에 보탬이 되려했던 딸의 권리마저 무시할 순 없다”며 줄기차게 가족들을 설득했다. 결국 가족 모두 김씨의 뜻을 받아들였다. 은희양의 신장 2개와 간은 3명의 환자에게 이식돼 새 생명을 안겨줬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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