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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0월 12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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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주사제 남용 방지라는 분업 취지가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국회는 7월말 약사법을 개정하면서 차광주사제(빛에 노출되면 약효가 변질되는 주사제)를 내년 3월부터 다시 분업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의―정(醫―政) 양측은 최근 이를 다시 뒤집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의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의약분업이 이달 말로 본격시행 3개월이 돼 가지만 의료계 집단행동과 정부의 무원칙한 대응으로 당초의 분업 취지가 크게 훼손될 우려가 높다.
선진국형 의약분업은커녕 ‘갓 쓰고 자전거 타는’ 이상한 형태의 의약분업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 이는 약사법 재개정 논의과정에서 국민의 편익과 입장은 배제된 채 의료계나 약계 등 이해당사자의 입장만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처방전이 대표적 사례. 의료계는 환자가 유효기간이 지난 처방전을 갖고 약국에 가서 약을 구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환자용과 약국용으로 현재 2부를 작성하는 처방전은 약국용 1부만 발행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환자용 처방전을 발행하지 않는 것은 환자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전공의 비상대책위의 한 관계자마저 “환자의 알 권리를 위해 대체조제시 환자와 의사의 사전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의료계가 환자용 처방전을 없애라고 주장하는 건 억지”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권쟁취투쟁위원회는 또 의―약(醫―藥)협력위원회를 법적 기구가 아닌 자율적 기구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의사들이 사용하는 상용의약품 목록을 공개하지 말라고 지시해 일선 의료기관과 약국간의 협력을 막고 있다. 이 때문에 대구시의사회 비상공동대표자 회의는 10일 의약분업이 정착하려면 상용처방 목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의쟁투에 건의하기도 했다.
정부가 동네의원을 달래려고 동네의원 초진료(8400원)를 종합병원(7400원)보다 높게 정한 것도 문제. 종합병원 초진료가 더 낮은 것은 3차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주장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회사원 한기철(韓基哲·38)씨는 “인력과 시설이 우수한 종합병원이 동네의원보다 진찰료를 더 받는 것이 상식 아니냐”고 말했다.
이처럼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의료정책이 의정간 밀실대화를 통해 결정되는 데 대해 시민단체는 의료보험료 납부 거부 등 불복종 운동을 거론하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건강권 확보 범국민대책회의와 보건의료산업노조는 “의정대화가 의약분업 원칙에서 벗어나고 국민 부담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방향으로 나갈 경우 이를 야합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반대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