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심 '아셈 호들갑' 도로공사에 시민들 짜증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37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 준비로 서울시내 도로 곳곳이 한꺼번에 파헤쳐지고 차로 도색작업이 지연돼 교통혼잡을 빚는 등 서울 시민들이 극심한 불편을 겪고 있다. 대다수 시민은 서울시가 외국 정상들을 대접한다는 명분 하에 시민들에게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9일 0시경 서울 태평로 도로 덧씌우기 공사 현장. 노면을 깎아내는 평삭기 등이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도로를 쪼아 대느라 이 일대는 소음과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특히 공사를 위해 6차로 중 2차로를 폐쇄하는 바람에 통행차량들은 야간에도 극심한 교통혼잡에 시달려야 했다.

서울시는 두 달 전부터 도심 20여곳 총 50여㎞를 ‘동시다발’로 뜯어내고 덧씌우기를 하는 바람에 밤만 되면 서울 전역이 공사소음과 교통체증으로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공사에 드는 예산은 150억원대.

도로가 이렇게 파헤쳐지고 있는 것은 당초 2002년 월드컵 이전에 마무리하려던 공사계획을 아셈 이전으로 무리하게 앞당겼기 때문. 이중에는 당장 보수할 필요가 없는 곳도 상당 부분 포함돼 있어 “서울시가 아셈을 앞두고 ‘호들갑’을 떠느라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택시기사 장원일씨(45)는 “공사 중인 대부분의 구간이 도로 주행에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곳”이라며 “아셈이 한 두 달 전에 계획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곳을 파헤쳐 불편을 주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며 서울시의 근시안적 전시행정을 비난했다.

현장에서 만난 공사인부 L씨도 “이 정도 노면상태라면 2∼3년 정도 여유를 두고 보수공사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공사가 마무리된 구간 중 상당부분은 아직까지 차선 도색작업이 끝나지 않아 교통 사고의 위험까지 높아지고 있다. 남대문, 광화문, 서소문, 을지로, 무교동 등 도로가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는 곳에 차선이 없어 혼란이 빚어 지고 있는 것.

차로도색을 책임지고 있는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통상 도로공사 개시 10일 전에는 공사 기간 등 세부일정을 통보하는 것이 관례지만 이번의 경우 서울시가 공사를 한꺼번에 많이 시행하는 바람에 도로 노선의 설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건설안전관리본부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도로보수 공사는 아셈 행사와는 관계 없이 매년 계속되는 도로보수 작업의 일부이며, 차선 도색작업은 보수공사가 끝난 뒤 3일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공백기간이 생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서울시는 도로공사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치자 담당 공무원이 아예 자리를 비우고 전화를 받지 않는 등 무책임한 대응을 하고 있어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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