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추천제…겉으론 "인성-특기" 속으론 "성적"

  • 입력 2000년 8월 23일 19시 20분


서울 Y고 3학년 이모군(18)은 지난주에 산 서울대 학교장추천제 원서를 아직까지 작성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 추천서를 써줄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

서울의 또 다른 Y고 교장은 성적이 우수한 특정고교 학생들이 싹쓸이하는 고교장추천제 원서를 써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이 교장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미리 확보하려는 대학들의 경쟁에 들러리를 서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적이 다소 뒤져도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오래 관찰한 결과를 담은 추천서로 전형한다는 고교장추천제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교장추천제를 둘러싼 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학교장추천제는 97학년도에 포항공대 등 4개 대학이 280명을 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올해(2001학년도) 99개 대학이 1만1811명을 선발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올해의 경우 고려대는 이달 말까지 원서 접수를 마치고 서울대는 다음달 6일부터 원서접수를 시작하는 등 올해 학교장추천제 전형이 사실상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추천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고교가 많아 학생들이 혼선을 빚고 있다.

또 추천 기준을 확정한 고교도 대부분 교과 성적을 기준으로 추천서를 작성하고 있어 학생의 인성 특성 특기 잠재력을 선발 기준으로 삼겠다는 당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23일 서울 지역 185개 일반 고교 가운데 공립과 사립 각각 10개교씩 20개교를 무작위로 선정해 조사한 결과 추천 기준을 정한 고교는 공립 6개교, 사립 4개교 등 10개교(50%)에 불과했다.

일부 고교는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추천 기준을 심의하도록 한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자체적으로 마련한 기준으로 학생 선발을 이미 끝내기도 했다.

기준을 확정한 10개교 가운데 교육부 지침대로 교과 성적과 교과외 활동(봉사활동 특별활동 등) 성적의 비중을 같게 한 학교는 경기 현대 화곡고 등 3개교뿐이었으며 나머지 7개교는 사실상 학업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가락고는 교과 성적의 비중을 지난해 80%에서 올해 90%로 올렸다. 신일고도 교과와 비교과 성적 반영 비율을 지난해 1대 1에서 올해 2대 1로 교과의 비중을 높였다.

가락고 심광한(沈珖漢)교장은 “성적은 다소 뒤지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학생을 추천하더라도 대학에서 받아주지 않아 고육책으로 성적 위주로 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일고 이기우(李寄雨)교장도 “성적이 좋은 학생이 추천을 받지 못하면 이의를 제기하는 학부모의 풍토도 문제”라고 말했다.

각 고교 진학지도 교사들은 한결같이 고교장추천제를 하면서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려대 김성인(金成寅)입학관리실장은 “학교장추천제 전형에서 학생의 특기 등 성장 가능성도 중요하지만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인 기초 학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장추천제 학년도별 현황

학년도97989920002001
실시 대학4개대26개대71개대83개대99개대
모집 인원280명1,212명5,346명10,193명11,811명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