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챙기자]기업 구조조정 비틀…금융불안 여전

  • 입력 2000년 8월 20일 18시 57분


▼개혁 뒷걸음치나▼

현대문제가 일단락된 듯 보이지만 자금시장 경색이 풀리지 않는 등 금융권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시중에는 자금이 풍성한데도 이들 자금이 기업이나 증권시장으로 흘러들지 않고 국공채나 우량회사채에 집중되는 시장 왜곡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탓이다.

회사채 발행도 삼성 LG SK그룹을 제외할 경우 현대자동차 하나로통신 코오롱 미래와사람 대성산소 등 성장성이 보장된 기업들에 한정되고 있다. 이마저 기준금리에 0.07∼1.08%포인트까지 스프레드(가산금리)를 얹어주어 발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금융권의 기형적인 대출상태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왜 외국계 은행들이 주택자금 등 개인 대상 소매금융에 집중하는지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는 H은행 여신담당자의 지적처럼 각 은행들의 기업대출은 여전히 빗장이 굳게 걸려 있는 상태다. 이러다 보니 7월말 현재 어음부도율도 0.35%로 6월의 0.16%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졌다.

기업―금융기관―정부의 상호 신뢰가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계 투자기관인 골드만삭스 등은 얼마 전에 낸 보고서에서 “한국경제는 실물경제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예측가능한 금융시장 질서의 신속한 정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금융시장 불안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의구심에서 비롯되고 있다. 외국투자자들은 정부와 기업 모두 구조조정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재벌들이 내놓기를 꺼리던 결합재무제표가 발표되던 이달 초 정작 금감위는 결합재무제표는 ‘단순 참고용’이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총수가 계열기업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배하는 구조가 낱낱이 드러나고 거품을 쫙 뺀 기업의 실상들이 한눈에 드러났지만 금감위는 결합재무제표의 의미를 축소하려는데 급급했다.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에 쫓기던 대기업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시장에서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면 왜 그렇게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이면서 결합재무제표를 만들려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당시 현대그룹은 이자보상배율이 1에도 못미쳐 그룹 전체가 장사를 해서 낸 이익으로 금융기관에 내야할 이자도 못갚고 있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압박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거론되던 현대그룹 정씨 3부자의 퇴진 등 지배구조개선은 없던 일이 됐다. 국내에서 활동중인 미국계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한국정부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앞두고 대기업의 기업구조조정을 일단 덮어두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현주(朴炫柱)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은 “정권 후반기로 들어갈수록 구조조정을 당하는 기업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이라며 “자칫 개혁의지가 퇴색되면 2년반 동안 쌓아올린 구조조정 성과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영해·이나연기자>moneychoi@donga.com

▼경기가 심상찮다▼

지난 2년반 동안 우리 경제의 회복은 성장과 국제수지, 물가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데 크게 힘입은 것이었다. 막대한 무역흑자는 외환위기 탈출의 일등공신이었고 고성장―저물가는 ‘한국판 신경제’의 개막이라고까지 불렸다.

그러나 이 세마리 토끼의 움직임이 하나같이 최근 눈에 띄게 둔해지고 있다.

성장의 경우 경기가 급격히 둔화될 것에 대비해 연착륙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경제팀 출범 이후 첫번째로 열린 9일의 경제장관 간담회에서도 많은 참석자들이 “경기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초까지만 해도 가파른 경기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걱정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기류다.

물론 생산 투자 등 주요 지표들은 10%대의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고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80%대 전후라는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어 비관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1·4분기(1∼3월) 이후 내수를 중심으로 경기상승 속도의 둔화폭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전분기 대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작년 2·4분기의 4.1%에서 올 1·4분기에 1.8%로 낮아진 가운데 경기선행지표가 올들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외환위기 탈출의 일등 공신이었던 무역수지는 올해 당초 120억달러였던 흑자 목표를 100억달러로 내려잡았지만 이마저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 2년간 630억달러라는 기록적인 흑자를 가능케 했던 수입감소와 환율 급상승 등 유리한 조건 대신 국제 원유가의 고공행진, 한동안 잠잠했던 통상압력 고조, 운임 등 부대비용 상승 등 악재들이 쌓이고 있다.

안정적 경제 운용을 위한 필수요건인 저물가 기조도 이상 조짐이 보인다.

7월중 물가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전월에 비해 0.3%, 작년 같은 달에 비해서는 2.9%나 상승했다. 재경부는 올 7월까지의 평균 소비자물가는 작년동기에 비해 1.7% 상승한 것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는 생활물가지수는 131.9(95년〓100)를 기록, 전월보다 0.5%, 작년 동월보다 4.8% 상승했다. 소비자물가와 생활물가의 작년 동월대비 상승률은 98년 12월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하반기에는 공공요금 인상과 국제유가 불안 등으로 물가오름세가 상반기보다 더 높을 것으로 보여 물가불안 우려를 낳고 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늘어만 가는 부채▼

재정 구조가 극도로 취약해지고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경기진작과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 실업자 축소 등을 위해 자금 지출을 크게 늘렸다. 재정의 악화가 앞으로 실물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작년말 현재 중앙정부가 직접 상환의무를 진 부채는 90조1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8.6%. 이는 외환위기 이전인 96년 36조8000억원(GDP 대비 8.8%)에 비해 무려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채무 18조원과 정부가 상환을 보증한 빚 81조8000억원을 합하면 국가부채 총액은 189조9000억원으로 늘어나고 GDP 대비 비율은 39.2%로 치솟는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국가 채무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경우 재정악화로 인해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이는 실물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도 당시까지 재정이 건전성을 유지한 덕택이 컸다. 재정은 그만큼 중요하다.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진 것도 재정적자가 누적됐기 때문. 외국계 투자가 입장에서는 투자대상 국가의 재정 건실성 여부가 투자를 결정짓는 주요 잣대가 된다. 실제로도 국가재정은 경제운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고 있다.

정부는 국가부채의 심각성을 인식해 올 하반기부터 재정을 긴축기조로 운영하고 200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키로 했다. 문제는 남북관계 정상화와 의약분업 시행 등 상황변화로 인해 정부 돈을 써야 할 곳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정부 재정의 주수입원인 세수는 한정돼 있다는 점.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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